매롱히히 [310058] · MS 2017 · 쪽지

2015-02-07 16: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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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공부시간에 대한 환상은 폭력이다

게시글 주소: https://faitcalc.orbi.kr/0005668063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재학중인 서재욱이라고 합니다
2년전쯤에 타 학습법 사이트에 칼럼을 연재했던 적이 있는데
지인으로부터 오르비에 이 글을 올려달라는 요청을 받아 올리게 되었습니다

공부시간의 압박으로 힘들어 하는 많은 분들이 읽고 도움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글을 시작하기 앞서...

  입시에 대한 오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입시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공부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오해와 환상을 부추기는 속설과 궤변은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요. “N월 점수가 수능점수다.”, “너보다 어려운 것을 공부하면서 더 열심히 하는 애들이 많으니, 너는 엄청나게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고3이 되면 다들 열심히 하기 때문에, 그때부터 시작하면 점수가 오르지 않는다.”, “학원 몇 개씩 뺑뺑이 돌리면서 새벽까지 공부하는 애들도 중상위권인데, 상위권이 되려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사교육 없이 혼자 공부해서는 공부시간이 너무 적으니 안 된다” “선행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공부시간이 부족해지니 선행을 해야 한다.” 등등.

  결론만 말씀드리면 위의 얘기들은 그럴듯하지만 죄다 헛소리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결론만 얘기하면 여러분이 와닿지가 않겠죠? ㅎㅎ 이번 칼럼에서는 위와 같은 주장들이 왜 모두 궤변인지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궤변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를 사실이라고 오해하게 되는지, 마지막으로 이런 궤변으로 인한 공부시간에 대한 환상이 우리나라 국민전체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고발해보고자 합니다.

 

① N월 점수가 수능점수다?

  공부시간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가장 대표적인 속설은 “N월 점수가 수능점수다.”라는 말입니다. 예컨데 “9월 점수가 수능점수다.” “6월점수가 수능점수다.” “3월 점수가 수능점수다.” 좀 심한 경우는 “고1 3월 점수가 수능점수다.” 이게 사실이면 모의고사를 보고나서 우리가 공부를 왜 할까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것 같아서 선생님께 여쭈어 보면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내가 학교/학원에 10년 동안 있으면서 지켜봤는데, 95%는 N월 점수와 수능성적이 똑같아. 그러니까 너는 지금부터 죽어라 공부를 해야 돼.” 이 말을 들으면 할 말이 없어지는 동시에, 내 인생의 절반동안 선생님으로 계신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니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로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이런 논리는 구조가 다음과 같습니다. “3월 점수가 평균 n등급이었던 학생의 99%가 수능 때 평균 n등급이었다. 따라서 3월 점수는 그 학생의 수능점수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그럴듯 해보이지만 이는 틀린 논리입니다. 왜냐하면 상관관계가 인과관계가 되지 않기 때문이죠.

 

  어떤 결과에 대해 엉뚱한 곳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느 곳에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오류입니다. 아마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이루어지고 있는 논쟁 속에서도 누군가 이런 식의 오류를 범하고 있을 거예요. 이와 관련된 속담으로는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가 있고, 흔히 말하는 ‘미신’이라는 개념도 이런 오류와 관련이 깊죠. 가령 지진이나 일식이 하늘이 노해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든가. 그만큼 이 오류는 누구나 범하기 쉽고, 또 논리적으로 그럴 듯해 보이는 궤변이에요.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게 되는 대표적인 경우 중 하나가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게끔 익숙한 예를 하나 들어보죠. 가령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가해자를 조사해본 결과 100%의 비율로 음란물을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음란물을 성범죄의 원인이라고 함부로 결론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생각하는 것이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상관관계를 통해 내린 결론이 합리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논리로 학문이 발전하는 경우도 있고요. 따라서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라고 하는 것은 나름 ‘합리적인’ 논리입니다. 사실 그렇기에 “N월 점수가 수능점수다”라는 말도 안 되는 속설이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분명 이는 틀린 말입니다. 이제 이게 어찌해서 틀린 말인지 자세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죠.

   

* 모의고사 점수는 수능점수의 ‘원인’이 아니다

저번 칼럼에서 얘기했듯이, 시험점수로 알 수 있는 사실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① 시험 보기 전까지, 그 시험에 필요한 공부를 얼마나 하였는가

② 해당 학생의 현재 공부습관 (또는 공부방법, 공부방향)

   
따라서 시험점수가 낮다면 셋 중 하나입니다.

① 공부하는 방법은 아는데 시험공부를 안 했거나

② 시험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공부방법이 잘못됐거나

③ 공부방법도 잘 못 되고 시험공부도 안 했거나

    
  첫 번째 경우는 공부를 하기만 하면 될 것이고, 두 번째 경우는 공부 방법을 조금씩 바꿔나가야 할 것이고, 세 번째 경우는 일단 한번 공부를 열심히 해봐서 자신이 ①의 경우인지, ②의 경우인지 확인을 한 다음 생각을 해야겠죠.

  일반적으로 첫 번째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우리나라같이 공부가 강요되는 환경에서, 공부를 잘 하는데 공부를 안 하는 경우는 당연히 드물겠죠. 또 두 번째 경우에서 점수를 올리는 사례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일단 공부습관이 바뀌기 위해서는 올바른 공부방법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하면 된다’식의 근성론이 만연하고 공부에 관한 잘못된 정보와 환상들이 넘쳐나죠. 설령 올바른 공부방법에 지식이 있더라도, 이를 진정으로 이해해서 실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흔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부습관에는 관성이 존재해서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 관성을 이겨내고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공부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 바뀔 수 있다는 믿음, 또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사례가 썩 많지는 않습니다. 물론 공부방법론 후기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만, 전국적으로 아직은 이런 사례가 많지 않아요.

  
    
  따라서 현재의 상황으로는 “N월 점수가 수능점수다”라는 말은 1~5%의 오차밖에 보이지 않는 나름 합리적인 예측이겠죠. 그래서 사실이라고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고요. 확률과 경험에 근거한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지만 분명히 이것이 논리적으로 옳은 말은 아닙니다.

    
   
모의고사 점수와 마찬가지로 수능점수가 낮게 나왔다면 그것은 셋 중 하나입니다.

① 공부하는 방법은 아는데 시험공부를 안 했거나

② 시험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공부방법이 잘못됐거나

③ 공부방법도 잘 못 되고 시험공부도 안 했거나

    
    
  이런 맥락에서 수능 점수가 낮게 나왔다면 그것은 수능 전까지 수능에 필요한 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절대로 N월 점수가 낮게 나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현재로서는 N월 점수가 낮게 나온 사람의 상당수가, 수능까지 공부습관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바른 방향으로 하지 못 하기에 N월 점수와 수능점수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N월 점수가 낮은 것이 N월부터 수능까지 수능에 필요한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의 ‘원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제가 공부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절대로 공부습관이 바뀌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모의고사 점수가 생각보다 낮게나왔으면 “N월 점수가 수능점수래!” 하면서 생각도 안 하고 달리기 시작할게 아니라, 나의 공부습관에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차근차근 따져보고 그것을 수정해나가면 돼요. 그러면서 수능에 점점 필요한 공부를 하게 되고, 수능에 필요한 공부를 하면 성적이 당연히 오를 것이고요.

    
    
  이렇게 얘기하면 아주 단순한 얘기인 것처럼 보이는데 왜 지금 현실에서는 N월 모의고사부터 수능까지 수능에 필요한 공부를 하는 사람이 적을까요? 간단하게 얘기해보도록 하죠.

  먼저 아직까지 바른 공부법이 보편화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부법 컨텐츠를 공유하는 곳에서나 ‘개념이해 없는 문제풀이는 무의미하다’와 같은 말이 상식으로 통하지, 아직까지 전국 수험생의 70% 이상은 무지막지한 문제풀이 양이 상위권을 만든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을 거에요.

  가령 A라는 병이 100년전에는 불치병이었는데, 현재는 치료제가 개발되어 간단하게 치료되는 병이라고 해봅시다. 분명 100년 전에는 “A애 걸리면 99% 확률로 죽는다”라는 말이 사실처럼 통용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치료제가 개발된 지금 누가 이런 말을 한다면 바보라고 하겠죠. 아직은 공부법이 보편화되지 않았기에 ‘N월 점수가 수능점수다’라는 말이 사실처럼 통용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분명 훗날 공부법이 모두에게 보편화된다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바보취급을 당할 겁니다. 어떤 질병이 정복되는 것은 치료제가 개발되는 순간이기보다는, 치료제가 보편화되는 순간이겠죠. 비슷한 겁니다.

    
    

  둘째로 공부방법을 진정으로 이해해서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공부방법의 변화로 비약적인 성적상승의 사례들을 ‘사기’라고 생각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죠. 이와 관련해서는 공부법 컨텐츠와 그것을 수용하는 독자, 둘 다에게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점점 구체화된 공부법이 보편화 되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직은 공부방법에 대한 추상적인 이야기를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를 흡수하며 풀어라.’ 이런 식으로요. 아니 개념을 이해하는게 어떤 건지 모르니까 성적이 안 나오는 건데 개념을 이해하라 그러면 어쩌라고요 ㅋㅋㅋ 이런 이유로 아이러니 하게도 공부를 이미 잘 하는 아이들이 공부방법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공부방법이 잘못된 입장에서는 ‘교과서위주로 공부해라’ 같은 말이 와닿지도 않고, 잘 믿어지지도 않을 수 있겠죠. 안 믿기면 물론 실천도 안 할 것이고요. 제가 공부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공부방법과 함께 그렇게 공부하면 좋은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려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공부법을 자세하게 써봤자, 독자가 이해하려는 자세가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공부법 역시 하나의 개념입니다. 따라서 직접 공부를 하면서 그 의미를 고민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령 공부법에 ‘문제를 풀며 개념의 이해정도를 파악한다’는 말이 쓰여 있으면, 직접 문제를 풀면서 채점 결과에 따른 자신의 개념이해정도를 고민해보아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자세한 공부법도 여러분의 공부를 대신 해줄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공부법을 참고하여 자신의 공부방법을 고민하며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지, ‘완벽하고 효율적인 공부법을 찾겠어’하면서 백날 공부법 컨텐츠‘만’ 뒤져봐야 절대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요. 글씨를 안다고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도록 해요.

    
    


* N월 점수가 수능점수가 되지 않으려면?

  제가 결론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무작정 공부시간을 늘리는 것이 절대로 낮은 모의고사 점수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시험에 필요한’ 공부를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요. 괜히 부족하지도 않은 시간을 부족하다고 착각한 다음 쫓기듯이 공부하면서 제자리걸음 하지 마시고, ‘어떻게 하면 시험에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차근차근 공부를 하라는 겁니다. 때에 따라 다른 사람의 공부법을 참고할 수도 있겠고요. 그리고 누가 ‘N월 점수가 수능점수니까 지금부터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된다’ 하면서 겁을 주면서, 지금 당장 달리는 것을 강요한다면 웃으면서 무시해 주시고요. 방향성도 없이 전력질주를 하면 조금 뛰다가 막막함에 지치기만 할 뿐이에요.

  “N월 점수가 수능점수다”라는 말이 사실이 되는 이유는, 많은 수의 수험생이 시험에 필요한 공부를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만 늘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N월 모의고사부터 수능까지 남은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8, 9시간씩 자고 적당히 놀면서 공부해도 시험에 필요한 공부만 시험 전까지 하면 반드시 점수는 오르게 되어있어요. 가령 저의 경우 6월 모의고사와 수능점수가 원점수가 90점 정도 차이가 났지만(당시 과탐 4과목), 여름방학 때 9시간씩 잤어요. 물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대신에 ‘어떻게 해야 시험에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을까’를 수능을 보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N월 점수가 수능점수다”라는 말이 사실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전보다 많은 공부시간과 빡센 의지가 아닌 시험에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자세입니다.

    
    


 

** 여담 **

  올바른 공부방법이니 잘못된 공부방법이니, 치료제니 뭐니 하는 얘기를 하려니까 제가 답답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공부를 못 하는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고 수정의 대상인게 아니에요. 사람마다 살면서 한 경험이 다른 것뿐이고, 현재 입시에서 수능 점수를 중요시 여길 뿐이죠. 후에 또 얘기하겠지만, 수능점수를 제한된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올리는 공부방법은 존재할 수 있어도, ‘학문을 추구하는 올바른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학문내용을 수용하는데 있어서 옳고 그름은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학교를 떠나서 하는 것은 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공부가 아닌 다른 경험을 위해 썼던 자신의 시간을 무가치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② 이미 너보다 ‘어려운’ 것을 푸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너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고3때 친구가 학원에서 풀었다는 모의고사 문제를 볼 일이 있었습니다. 생소한 유형이라 잘 안 풀리더라고요. 그런데 친구가 그 문제를 두고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학원에는 이거 껌으로 푸는 애들 완전 많아. 미쳤어.’ 그 외에도 ‘특목고 애들은 기출은 진작에 다 풀고 다들 ○○문제지 푼데.’ 이런 말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지의 문제를 보면? ‘어려워’요. 이런 상황을 접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푸는 애도 널리고 널렸는데,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하나….’

    
    

* 어렵다는 것의 환상

  나보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애들이 3,4등급을 받는 것을 보면, 1,2등급을 받기위해서는 이 친구들보다 ‘더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된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풀기 까다로운 문제가 영양가 있는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얘기하지만 수능에는 ‘중요한’ 문제가 나오지, ‘어려운’ 문제가 나오지 않습니다. 입시가 경주라고 한다면, 입시는 누가 더 빨리 뛰어서 멀리가나 내기 하는 경주가 아니에요. 정해진 목적지까지 시간 안에 도착해야 되는 경주입니다. 누가 얼마나 빨리 달리든, 나보다 앞선 것처럼 보이든 상관없어요. 내가 정해진 시간 전까지 목적지에 도착하면 돼요.

    
     

  ‘어려운’ 문제를 푸는 애들을 보면 나보다 ‘앞서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데, 그 ‘어렵다’는 개념의 환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어요. 저번 칼럼에서 얘기했듯이, 어려운 문제라는 건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사고과정이 많은 문제입니다. 익숙한 유형의 문제를 보면 풀이가 익숙하기에 쉽게 풀리지만, 생소한 유형의 문제를 보면 익숙하지 않아 어렵죠. 이는 누구나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도 익숙하지 않을, 생소한 유형의 문제를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영양가 있는 문제냐는 별개의 문제이지요. 수능은 범위가 한정되고 출제범위가 명확한 시험입니다. 수능의 범위나 취지에 벗어나는 생소한 문제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그런 건 수능에 안 나온다고요.

    
    


* 쓸데없는 공부컨텐츠가 생겨난 이유

  모두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엄청납니다. 대부분의 부모님이 자기 아이가 공부를 잘 하기를 바라고, 그러다보니 학생들도 공부를 잘 하고 싶어 합니다. 욕구가 있는 곳에는 시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사교육시장은 어마어마하지요. 공부라는 수요를 가진 학생, 학부모가 고객이 되고, 학원과 같은 곳이 판매자가 되는 것이죠. 문제는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할 거리가 마땅히 없는 겁니다. 어차피 수능에 나오는 문제의 유형은 정해져있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새로운 상품을 개발을 해야 되겠죠?

  그러니까 다른 곳과 차별되는 자신의 상품을 만들어서 구매욕구를 높이는 것입니다. ‘남들이 못 푸는 어려운 문제를 푼다 = 남들과는 차별되는 더 높은 수준의 공부상황이다’ 라는 환상을 이용해서요. “너네 이런 유형 어디서 본적있냐? 없지? 우리 학원 안 들어오면 이런 문제를 풀 줄 아는 애들보다 뒤쳐진다.” 실제로 이런 말을 하는 학원이 존재한다는 걸 지인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물론 모든 학원이 이런 식으로 사기를 치는 사기집단이라는 건 아닙니다만, 실제로 이것이 우리나라 사교육의 한 단면임은 확실합니다. (학원에서도 참 교육을 실천하려하시는 분들도 계셔요.)

 

  꼭 나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도 쓸데없이 어려운 사설문제가 문제집이 수능에 대한 오해를 만드는 경우는 많습니다. 또 저번 칼럼에서 언급한 ‘변별력’이라는 개념 때문에 쓸모없이 어려운 내신문제를 출제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리고 또 어려운 문제로 공부하는 것과, 그 문제들을 흡수하며 공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괜히 뭔가 대단한, 앞서가는 공부를 한다는 기분을 내고 싶어서 상황에도 맞지 않는 어려운 문제만 풀면서 시간낭비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참 안타까운 일이죠. 어려운 문제로 수업을 하는 학원을 다니는 친구를 보면 대단해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글쎄요, 그 문제들을 정말 이해하면서 풀고 있는 걸지는 또 모를 일이에요.

 

  후에 또 얘기를 하겠지만, 시험에 필요한 공부라는게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내가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푸는 애를 보면 마치 절대 만나지 않는 평행선에 놓인 기분이 들지만, 어려운 문제를 푼다 = 앞섰다’가 아니에요. 앞서 얘기했듯이 입시는 시간내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관건인 경주이기 때문에 얼마나 빨리 가느냐, 얼마나 앞서갔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방향이 중요한 것이지요. 달리는 속도가 빠르거나, 앞서가면 목적지에 먼저 도착할 확률이 높아집니다만, 결국 맨 마지막에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방향입니다. 누구보다 어려운 문제를 풀면서 공부를 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올바른 방향일지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죠.

 

③ 너보다 더 빠른 진도로 공부하는 애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달리지 않으면 늦는다?

  이것도 위와 비슷한 느낌의 궤변이죠. 입시를 하다보면 이런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습니다. “N학년이면 어디까지는 떼야한다.” “이과 상위권들은 이미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수2까지 떼고 들어간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해지고, 당장 무엇이라도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선행을 하기 위해 학원을 등록하기도 하고요.

 

다시 정리해서 얘기를 해보면, 시험이라는 건

① 시험 전까지

② 시험에 필요한 공부를

③ 필요한 양만큼

④ 정확하고, 꼼꼼하게

하면 잘 볼 수 있어요.

 

  시험공부를 먼저 시작하든, 나중에 시작하든, 시험전까지만 시험공부를 끝내면 됩니다. 입시에 영향을 주는 시험이 어떤게 있죠? 내신시험이랑 수능시험이 있죠? 뭐 내신을 신경 쓰지 않으시는 분은 수능 하나만 있을 거고요. 만약 내가 고1이라면, 다른 애가 지금 미적분을 하든, 기하와 벡터를 하든 지금 내가 시험 볼 건 고1수학이에요. 시험을 보기전까지 고1수학만 공부를 하면 돼요. 고2때도 마찬가지고, 고3때도 마찬가지고, 수능때도 마찬가지고요. 시험점수는 공부를 언제 시작했느냐로 성적이 나오는게 아니라, 시험전까지 공부를 얼마나 했느냐로 나오니까요.

 

  아마 이렇게 얘기해도 불안감이 드는건, ‘다른 애는 이미 한번 공부를 한 것이고, 나는 처음 공부를 하는 것인데, 시험기간 때는 나도 열심히 하고 걔도 열심히 할테니 내가 공부량이 적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험점수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공부를 했느냐가 아니라, 시험에 ‘필요한’ 공부를 얼마나 ‘충분하게’ 또 ‘꼼꼼하게’ 했느냐 입니다. 겉핥기로 5번 보는 것보다 제대로 2번 보는 것이 시험을 더 잘 볼 수 있어요.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봤자 맞는 것만 계속 맞고, 틀리는 건 계속 틀리게끔 공부하면 어느 정도 점수에서 제자리걸음이에요. 그리고 선행을 한다고 해서 대단하게 봤는데 알고 보면 이렇게 공부를 하고 있는 경우가 참 많고요.

  절대로 먼저 공부한다고, 많이 공부한다고, 빨리 공부한다고 정확하고 꼼꼼하게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늦게 시작했든, 적게 공부하든, 느리게 공부하든, 시험전까지만 꼼꼼하고 정확히 필요한만큼 공부하면 돼요. 그러니까 제발 마음 좀 편히 먹으셨으면 좋겠다고요.

 

  앞서는 선행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이번에는 선행이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보도록 하죠.

 

  인간은 한 순간에 하나밖에 집중할 수 없어요. 이는 1분 1초 같은 작은 단위의 시간으로도 그렇지만, 1달과 같은 큰 단위의 시간으로도 그럴 수 있습니다. 괜히 내년에 배울거 지금 공부하느라 지금 시험을 망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공부하는 것에 집중해서 지금 시험을 잘 보고, 1년이 흘러 ‘내년이 지금이 되면’, 그 때 또 지금 공부하는 것에 집중해서 지금 시험을 잘 보면 되는 것입니다. 괜히 선행에 대한 이상한 불안감 때문에 학원을 끊어서 선행을 하면서, 어디에도 집중을 제대로 못하며 지금 보는 시험을 망칠 것이 아니라요. 그리고 선행해놔봤자 그 때 되면 또 까먹어요.

 

  또 진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어느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공부를 하고 자신감을 잃을 수 있어요. 언제나 얘기하지만, 모르면 어렵습니다. 그리고 알려면 알 때까지 차근차근 보아야 하고요. 하지만 빨리 진도를 빼야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빠르게 읽으며 정작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읽으면, 몇 번을 읽어도 어렵습니다. 가령 국어지문을 읽을 때를 생각해봐요. 조급한 마음에 급하게 지문을 읽는다고 도움이 되던가요? 오히려 읽은 지문 또 읽느라 시간이 더 걸리죠?

  자신이 공부하는 내용이 이해가 안 되면 일단 공부내용이랑 소통하는 기분이 들지 않아 외로워지고, 내가 공부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 위축감이 듭니다. 이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의 문제입니다. 제가 이렇게 잘난듯 얘기하면서도 막상 대학교에서 새로운 걸 공부하다보면 공부내용이 어렵게 느껴지고 자신감이 떨어져요. 그런데 시간을 들여서 끝내 내용을 이해하고, 어려웠던 내용이 쉬워지는 것을 확인하면 흥미와 자신감이 생깁니다.

  아마 뒤쳐진다는 마음에 ‘지금 기본부터 하면 늦어’라는 생각으로 상황에도 맞지 않은 어려운 공부를 달리듯이 하는 분들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 불안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기본부터 차근차근 하는 것이 오히려 지름길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급하다고 빠르게 공부해봤자, 아는 것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늘어나요. 그리고 그런 분께 가장 시급한건 진도를 따라잡는 것이 아닌, 기본적인 것 하나라도 꼼꼼하고 확실하게 이해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는 것입니다.

  
  물론 사기를 쳐서는 안 되겠죠? 당연히 선행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하는 공부를 너무나도 완벽하게 해놓아서 시간이 남아돌면 선행을 하셔도 무관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한번 미리 봐놓으면 공부를 할 때 편한 것은 사실이고요.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학기 중에 하시는 건 별로 추천 드리고 싶지 않고, 방학 때 하시는 걸 추천 드려요. 그리고 선행을 굳이 하겠다면 다음 학기 때 공부할 것을 교과서와 익힘책으로 한번 공부해보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 경우에 선행을 하면 ‘편할’ 수는 있지만, 절대로 꼭 ‘해야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험 전까지만 공부를 잘 마치면 되니까요. 그리고 예복습을 한다면 선행을 하지 않더라도 이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마찬가지로 학기 중에는 선행을 ‘안 해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보는 시험 잘 볼 자신도 있고 그냥 개인적 흥미로 선행하고 싶으면 하든 말든 여러분 마음대로 하세요 ㅎㅎ

 

 

④ 매일 학원에서 새벽까지 공부하는 애들도 중상위권인데, 너는 더 많이 공부해야된다?

  지금까지는 공부는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좋은 것처럼 얘기를 했는데요, 이번에는 지나친 공부시간이 어떤 식으로 비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는지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학습이라는 단어는 배울 학(學)자와 익힐 습(習)자로 구성됩니다. 즉, 배우고 익힌다는 뜻이지요. 실제로 학습의 과정은 먼저 수업, 교과서 등으로 공부내용을 접하고, 익히는 시간을 가져서 자신의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익히는 작업에는 반드시, 공부내용의 의미를 여유있게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가령 공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면 배우는 것은 테두리 선을 긋는 것이고, 익히는 것은 채색을 하는 것입니다. 채색을 해야 비로소 공부한 내용이 나에게 의미있는 지식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하루 24시간 잠자는 시간 빼고 온통 지식을 머리에 쑤셔넣으면? 배우는 것은 많은데, 익히는 것은 하나도 없게 됩니다. 학습이 되어야 하는데 학만 있고 습은 없는 것이죠. 무채색의 지식들을 머릿속에 억지로 꾸역꾸역 집어넣으려고 하면 공부내용에 의미를 모르니 재미도 물론 없을뿐더러 실제로 공부효율마저도 떨어집니다. 인간은 아주 합리적인 동물이라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지식은 잘 기억하지 않거든요. 애초에 공부라는 것 자체가, 배우는 내용에서 중요한 것을 파악하여 흡수하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공부시간을 잔뜩 늘리는 것은 겉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공부를 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럴듯하게 보입니다만, 실제로 그 중 흡수되는 내용은... 글쎄요 ㅎㅎ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한다고 앉아있는 시간이 아니라, 머릿속에 들어오는 공부량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얘기하지만 글씨를 많이 읽는다고 의미가 많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에요. 이는 공부를 아무리 오랫동안해도 흡수가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비관적인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필요한 공부를 충분히 했다면 공부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놀아도 된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잠 잘 거 다 자고 놀 거 다 놀면서 공부도 잘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니 오히려 잠 잘 거 다 자면서 충분히 쉬고, 놀 거 다 놀면서 심적 여유가 생겨야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하루 24시간 눈뜬시간은 모조리 공부를 하는 것보다.

  물론 이런 식으로 기계처럼 공부하는 사람이 실존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분명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 공부하고 있을 누군가를 상상하면서, 자신과 비교하며 불안감을 느끼고 계실 거란 것 다 압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건 공부는 능동적으로 일어나는 작업이기에 반드시 혼자서 지식의 의미를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따라서 학원에서 하루 열 몇 시간씩 공부하는 것이 무슨 ‘가장 이상적이지만 너무 비인간적이라 차마 나는 못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이 비인간적인 것은 물론 공부효율마저도 썩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마 오히려 우리나라에는 학원 공부시간을 줄여야 성적이 오를 사람이 수두룩할 걸요? 사실 이건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헛수고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참으로 슬픈 이야기입니다만….

  아무튼 괜히 부족하지도 않은 자신의 공부시간을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죄책감 느끼지 마세요. 누가 ‘놀 거 다 놀고 언제 공부하냐. 놀 시간 있으면 그 시간에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라’라고 헛소리를 해대면 ‘공부를 많이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필요한 공부만 충분히 흡수하면 됩니다’라고 논리적으로 대답해주시고요.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저의 경우 축제 때 밴드공연도 하고 학생회 활동도 하고 이것저것 많이 했던 고2 2학기 때 내신성적이 8과목 중 7과목 1등급으로 가장 좋았어요.

    

  물론 ‘내일 당장 시험을 보는데 공부가 하나도 안 되어있어서 겉핥기든 뭐든 한글자라도 머리에 많이 집어넣어야 한다’ 뭐 이런 거라면 절대적인 공부시간을 늘리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공부는 필요한 만큼만 하는게 가장 좋습니다. 특히나 수능같이 장기적으로 하는 공부는 더더욱 공부시간을 적절히 해서 이해하고 흡수하며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안 그러면 까먹어서 또 공부해야 돼요. 가령 저의 경우 ‘수능 벼락치기’를 하느라 고3 여름방학 때 2주일동안 하루에 150~200문제씩 수학문제를 풀었었는데, 나중에 10월 모의고사에서 방학 때 풀었던 유형과 똑같은 유형의 문제가 나왔는데 틀렸습니다.

 

⑤ 이렇게 힘들게/열심히 공부하는 애들도 있는데, 고작 그 정도 밖에 안 하면서 너의 상황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사치다?

  사실 지금껏 해온 얘기만으로도 이게 헛소리라는 건 쉽게 알 수 있겠습니다. 헛공부를 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슬픈 것이긴 하지만, 냉정하게 얘기를 하면 성적을 올리는데 중요한 건 ‘힘들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힘들게 공부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더 힘들게 공부할 수 있습니다. 가령 누가 물구나무를 서서 공부를 한다고 해봐요. 분명 이건 힘들게 공부하는 것이 맞고, 이렇게 공부하는 데 엄청난 노력과 의지가 필요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게 헛고생이라는 건 누구나 뻔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이런걸 보고 ‘아 나는 엎드려뻗쳐 하고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던데, 반성해야겠다.’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처구니없어 보입니다만,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들이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ㅠㅠ

 

  가령 앞서 언급했던, 매일매일 야자 끝나고 새벽까지 학원을 다니는 건,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비효율적입니다. 이 외에도 입시를 하다보면 ‘빡세게’ 공부하는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허벅지를 꼬집어 가면서 잠을 안 자고 공부를 했다든가.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이해는 하나도 못하면서 모조리 배껴 적는다든가. 쉽게 유도될 수 있어서 교과서에도 없고 외울 필요도 없는 곱셈공식들을 종이에 빽빽이 적어가며 암기를 한다든가. 문제지를 몇 권씩 보면서 모든 유형의 풀이를 이해도 못하면서 외운다든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냉정히 얘기해서 이런 식의 공부의 80%는 헛수고입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하다보면 ‘이건 뭔가 아닌것 같아, 이런 방법은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아’라는 느낌이 와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하고요. 이건 인간으로서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인데, 이를 방해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근성주의죠. 우리나라는 근성주의에 대한 미신이 있어서, 조금 덜 노력하고 좋은 성과를 바라는 걸 도둑놈 취급을 합니다만, 저는 이건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건강한 자세라고 생각하며 이런 자세에서 인류가 발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적은 노력으로 많은 성과를 거두는 것이 바로 ‘효율’이라는 개념이죠.

  가령 사람이 ‘조금 덜 힘들면서 빠르게 이동할 수는 없을까?’하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건 없었겠죠. ‘좀 더 쉽게 먹을 것을 구하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았으면, 농사도 하지 않고 가축도 기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랬다면 인류에게 문명도 문화도 없었겠죠. 핸드폰도 컴퓨터도 인터넷도 아무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만날 편할 궁리만 하고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를 바란다면, 그건 분명 도둑놈 심보인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공부효율을 높이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아주 건강한 것이며, 오히려 아무생각 없이 열심히만 하는 것이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생각없이 열심히만 하는 건 사실 누구나 할 수 있거든요. 공부과열과 근성주의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효율’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면서, 전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있습니다.

 

  누가 얼마나 힘들게 공부하고 있든 말든 상관없어요. 알게 뭐에요. 내가 공부하는 내용들이 나에게 흡수된다는 느낌, 그래서 실력이 늘고 있다는 느낌만 있으면 돼요. 그리고 자신의 상황에서 충분한 만큼 공부를 하면 되고요. 그러니까 제발 누가 ‘너 고작 그 정도만 고생해서 되겠냐’식의 헛소리를 한다고, 괜히 자기보다 더 힘들게 공부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자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겁니다. 물론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는 친구들이 고생을 덜했으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람입니다만….

 


⑥ 사교육 없이 혼자 공부해서는 공부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안 된다?

  뭐 똑같은 얘기 굳이 또 길게 하지 않겠습니다. 이게 헛소리라는 건 뻔하죠? 꼭 사교육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상황에 따라 오히려 사교육을 끊고 공부시간을 줄이더라도 공부내용을 익히는 시간을 늘린다면, 공부시간은 줄이는데 성적은 오르는 ‘마법 같은’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공부는 능동적 작업이기 때문에 결국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는 건 스스로 고민하고 머리에 넣을 때입니다. 수업을 10시간 동안 생각 없이 듣는 것보다, 1시간이라도 내가 직접 고민하며 공부하는 게 더 배우는 것이 많을 수 있어요. 제가 가르쳤던 학생 중에 학원을 끊고 공부시간은 훨씬 줄었는데 오히려 성적은 올랐던 경우들도 있고요.

 

  사실 공부과열이 없었으면 이게 ‘마법 같은’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텐데 말이죠. 과열과 환상 때문에 효율이라는 감각이 마비된 채,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필요한 만큼 공부를 하고 공부한 만큼 성적을 올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기적’이 되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이유로 성적상승에다가 ‘기적’이라는 말을 붙이는 걸 싫어해요.

 

  저의 경우 고1 중순 이후부터 사교육을 받지 않았어요. 저는 자율적인 타율은 자율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을 잘 고민해서 필요한 사교육을 받는다면 그것이 문제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사교육을 함으로서 공부시간을 늘리며 긍정적인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그러니까 여러분보고 사교육을 받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게 정말 여러분들의 주체적인 고민하에 필요하다 생각돼서 다니는 것이냐는 거죠. 가령 만약 제가 이런저런 사교육을 받느라고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해야 했다면, 저는 졸음을 참는데 의지력을 쓰느라고 공부하는데 의지를 발휘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면 당연히 그날 그날 배운 공부내용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했을 것이고요. ‘사교육 없이 혼자 공부해서는 공부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뒤쳐진다?’ 그러면 저는 사교육 없이 혼자 공부하느라 공부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서울대 왔나보네요.





** 효율적/비효율적으로 공부하는 예시

  올바른 공부방향으로 필요한 공부만하면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계속하는데, 아무래도 이렇게만 얘기해서는 여러분이 와닿지 않겠죠. 시간에 쫓기지 않는 좋은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공부를 하면 어떻게 공부효율이 올라갈 수 있는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해볼게요.

 


* ‘정상적’으로 공부하면 공부에 리듬감이 생긴다

  모든 것에는 리듬이 있습니다. 물론 공부에도 리듬이 존재합니다. 때로는 빠르고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긴장되게 때로는 느슨하게 이루어집니다. 리듬감 없는 음악은 심심하듯이, 리듬감 없는 공부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힘들고요.

  자신의 공부흐름을 만들어 그 흐름을 타면서 공부해야, 공부가 효율적이고 재미있게 이루어질 수 있어요. 학원이나 학교의 흐름에 억지로 질질 끌려가면 재미가 없습니다. 가령 그네를 끈다고 해봐요. 아시다시피 그네는 그네가 움직이는 모든 순간에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네의 속도가 최대가 되는 그 순간만 힘을 줍니다. 이런 식으로 그네의 주기와 힘을 주는 주기가 공명을 해야 많은 힘을 들이지 않으며, 그네를 재미있게 탈 수 있죠. 하지만 그네를 억지로 꽉 잡고, 모든 위치에서 힘으로 그네를 민다고 생각해봐요. 재미도 없을뿐더러 엄청 힘들 것입니다.

 

  공부에는 다음과 같은 흐름이 존재합니다. 맨 처음에, 개념을 공부해요. 개념을 처음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마치 낯선 곳에 처음 간 것 마냥 살짝 긴장이 됩니다. 이해가 될 때까지, 시간의 여유를 두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요. 어느 순간 이해가 됩니다. 모르던 게 이해가 되면서 긴장이 풀리고 재미가 생겨요. 개념내용에 따라 신기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요. 그리고 자신감도 붙어요. 자신감과 흥미가 생기면 가속이 붙습니다. 다음 내용을 읽어요. 이런 식으로 개념을 2,3번 정독하면 개념의 대부분은 이해가 되고, 어느 정도 외워집니다.

  이제 문제를 풉니다. 문제 상황을 읽고, 개념내용을 이용해서 풀이를 도출하고, 답을 내요. 그리고 맞았는지 틀렸는지 답지를 봅니다. 나의 생각이 맞았나 틀렸나 확인하는 작업이니 살짝 긴장이 돼요. 아. 맞았어요. 긴장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져요. 내가 내용을 잘 이해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풀어서 맞추니 신이 나고 성취감이 들어요. 그래서 다음문제를 읽을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생겨요. 그러면 다음 문제를 보고, 또 맞추면 신이 나고. 사실 저는 이런 느낌으로 고1때 수학문제 푸는게 재미있었어요.

  맞는 경우도 있지만 틀리는 경우도 있어요. 틀리면 답지를 봐요. ‘내가 무슨 생각이 잘못 됐기에 잘못된 답을 냈을까?’ 궁금함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궁금증이 해결되면 재미를 느낍니다. 긴장과 이완의 리듬이 있거든요. 답을 보니까 내가 개념을 조금 잘못 이해했어요. 개념을 다시 봐요. 잘못 이해했던 부분을 찾아서 시간을 들여서 제대로 이해해요. 개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기에 이 작업을 수월하게 이루어집니다. 내가 이 문제를 왜 틀렸는지가 이해가 돼요. 부족한 부분이 하나하나 채워지고 실력이 는다는 기분이 들어요. 내가 몰랐던 부분들을 얼마든지 채워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요. 또 문제의 관점으로 개념을 다시 보면서, 개념의 내용들이 각각 하나의 색깔을 가진 지식이라는 기분이 들어요.

  유형별로 정리해놓은 수학문제지를 푸는 경우 다음과 같은 흐름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개념을 다 읽고 문제를 풀기 시작해요. 그러면 개념을 문제상황에 적용하는게 처음에는 서툴러서 버벅거립니다. 한 문제를 버벅거리면서 풀어요. 그리고 다음 문제를 봅니다. 약간 표현방식이 다르지만, 같은 유형이라 풀이에 쓰이는 사고과정이 똑같아요. 따라서 그 전 문제보다 빨리 풀립니다. 그 다음 문제는 더 빨리, 또 그 다음 문제는 더 빨리. 이렇게 문제를 푸는데 가속이 붙습니다. 문제풀이에 가속이 붙으면 재미가 느껴지고요. 그리고 다음 유형을 접하고. 다시 느렸다, 빨랐다, 느렸다 빨랐다. 리듬감이 생깁니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면 하루에 수학문제만 100문제 푸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또 공부를 하다보면, 머릿속의 기억들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가령 일주일 만에 수학문제를 풀려고 문제를 딱 보면, 한 1분정도 멍때립니다. 그러다가 다시 개념을 뒤적뒤적 ‘아 그래 이런 내용이 있었지’ 하면서 문제를 1,2개쯤 풀다보면, 책상이 정리되듯 머리에서 다른 정보들이 정리가 되고 머릿속에 잠자고 있던 수학의 기억들이 하나 둘씩 깨어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머릿속에 모든 공간을 수학문제를 푸는데 집중하게 되고, 문제풀이에 가속이 붙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 때문에 수학공부는 몰아서 하는 편이었어요. 논리위에 논리를 쌓는 수학의 특성상, 띄엄띄엄 공부를 하면 비효율적인 경우가 더러 있거든요. 소위 얘기하는 ‘감’이라는 것도 이런 느낌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뒤쳐진다는 느낌이 들 때, 오히려 하나라도 차근차근 정확하게 이해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이제 공감이 되시나요?

 

 

* 리듬감 없는 공부

  시간에 쫓긴다든가, 졸음을 참는다든가 하면 공부를 리듬감 없이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교에서 했던 공부방식 중 비효율적인 케이스들을 몇 가지 소개해볼게요. 아마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교에 진학하며 한시라도 빨리 휴학을 하려고 생각을 했고, 1학년 1학기는 팽팽 놀았습니다. 1년간 휴학을 하고 1학년 2학기로 복학을 했죠. 휴학 중에 벌려놓은 일들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 2학기때 정신이 좀 없었어요. 동아리도 나가야 하고, 학습상담 알바도 계속 해야 하고, 틈틈이 칼럼내용도 고민하고, 무엇보다 1학년 1학기 내용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한 학기에 두 학기 분량의 공부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아시겠지만 졸리면 머리가 안 돌아가요. 머리가 안 돌아가니 숙제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시간이 많이 걸리니 또 늦게자고, 늦게자니 졸리고, 졸리니 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정작 공부량은 많지가 않았죠. 아무런 리듬감 없이 그 때 그 때 나오는 숙제만 어떻게든 떼워서 제출하는 식으로 공부하는데, 공부내용이 머릿속에 얼마나 잘 들어왔을까요.

  뭐 효율만 적으면 그래도 괜찮겠습니다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공부내용을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데 그전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을 쓰는게 느껴지면서, 마치 제가 멍청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또 잠이 적으면 사고가 부정적이게 되어 자기평가가 떨어지고, 불안감 같은 부정적인 정서도 쉽게 느끼게 됩니다. 부정적으로 사고하니 의욕이 떨어져서 효율도 더 떨어지고, 효율이 더 떨어지면 자신감이 더 떨어지고. 이게 반복되어 자신감이 바닥나면, 나중에 시간이 충분한 상황이 되어도 그 자신감이 쉽사리 회복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효율과 자신감뿐일까요. 재미도 떨어졌어요. 시간에 쫓기니 대체 각 공부내용이 무슨 의미인지 고민할 여유가 충분하지 않는 겁니다. 궁금증이 채 생기기 전에 머릿속에 지식을 꾸역꾸역. 긴장과 이완 따위는 없는 무미건조한 템포. 다들 느껴봐서 아시죠? 이러면 재미가 없어요.

 

  또 시간에 쫓기다보니 답지를 보고 숙제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내일까지 숙제를 내야 돼요. 근데 개념을 하나도 몰라요. 지금 개념을 차근차근 이해하며 숙제를 하자니, 밤을 새도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념을 적당히 훑어서 대충 결론적인 공식들만 읽어요. 그다음 문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답지부터 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개념공부를 하고 직접 문제를 풀다가 틀려서 답지를 보면, 답지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충분한 상황에서 답지를 보게 됩니다. 궁금증과 해결의 리듬이 존재하죠. 또 개념이해가 선행된 채로 답지를 보면 답지내용이 잘 이해가 되고, ‘와 이렇게 푸는 거구나’하는 약간의 지적희열감이 있습니다. 반면 개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 한채로 답지를 보면? 답지가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지식이 아닌, 이해하고 외워야 한다는 부담을 주는 지식이 됩니다. 그리고 답지를 읽는 과정도 리듬감 없이 무미건조하고요.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는 지식을 머릿속에 꾸역꾸역. 재미도 없고, 외워야 한다는 부담만 들고, 이 풀이를 다른 문제에 응용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안 생기고. 실제로 이런 식으로 공부해서는 다른 문제에 응용을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고요.

 

  

  제가 학원 뺑뺑이 돌면서 잠을 줄이면서 공부를 하는 것을 괜히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공부효율, 자신감, 재미는 사람의 문제이기보다는 상황과 방향의 문제일 확률이 높아요. 저라고 무슨 태어나서 지금까지 효율적으로만 공부를 해왔을까요, 저도 다 겪어봤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뭔가 비효율적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자신의 공부상황이 어떠한가 학번 객관화해보시길 바라요. 자신의 부족하지도 않은 의지를 자책하며 더 ‘빡세게’하려하지 마시고요.

 

  고3 때도 이런 식으로 공부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간단하게 일기를 썼던 적이 있습니다. 인용해볼게요.


 



** 공부시간에 대한 환상은 왜 폭력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들에게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라고 하면서, 1분 1초 아껴가며 공부를 하기를 강요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대체 왜 우리 나이면 ‘학생’이어야 하는가 싶지만, 뭐 백보 양보해서 다 맞다고 해보죠. 과연 그러면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 속에서, 시간에 쫓기는 조급한 마음이 그 잘난 놈의 공부를 하는 데는 도움이 되느냐? 한번 알아보도록 하죠.

 

  다들 공부가 공부시간만 무작정 늘리면 되는 것처럼 착각을 하며, “N월점수가 수능점수다” “지금도 적들의 페이지는 넘어가고 있다” 등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되도 않는 말을 만들어서 1초라도 더 많이 공부하는 것을 강요합니다. 하지만 불안감과 조급한 마음은 공부에 있어서 맹독입니다.

 

 


* 고민할 여유가 없다

  일단 심적으로 쫓기면, 자신의 상황을 찬찬하게 고민해볼 여유가 생기지 않습니다. 앞서 쭉 살펴봤지만, 입시공부를 하다보면 그럴듯한 궤변에 홀랑 넘어가서 비효율의 늪에 빠져 공부를 하게 되기가 쉬워요. 아무리 달려도 목적지가 가까워지지 않으면, 더 빨리 달릴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서서 나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가 고민을 해야해요. 하지만 자꾸 불안감을 주입하니까 무서워서 도저히 멈춰 설 수가 없는 겁니다. 사실 100일 비효율적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10일 고민하고 40일 효율적으로 공부하는게 훨씬 공부량은 많을 텐데 말이죠.

  “N월 점수가 수능점수다” 같은 헛소리를 들먹이면서 막연히 ‘지금 당장 열심히’ 공부하라고 합니다. 일단 이런 말에 자극을 받아서 무작정 달려요. 그래서 무작정 달리면 공부가 잘 되냐? 해도 해도 부족한 것 같고, 언제나 나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고. 어디로 가야되는지,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달릴 수 있을까요? 사람이니까 그건 못 해요. 너무나도 불안하고 막막하거든요. 그래서 멈춰서면 고작 이 정도에 멈춰선다고 의지박약자 취급합니다. ‘어린애도 아니고 이것저것 따지는게 많냐, 고민할 시간에 공부나 해라’ 하고 헛소리를 찍찍 싸댑니다. 그래놓고는 ‘다 너희 잘 되라고 하는 소리다’ 이딴 소리나 하고 있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물론 실제로 좋은 의도로 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궤변으로 대체 얼마나 많은 인생들이 왜곡당했을까를 생각하면 도저히 이런 얘기를 점잖게 할 수가 없네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죠. 하지만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건, 실패에서 성공의 열쇠를 고민할 시간이 있을 때입니다.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면, 실패는 실패의 어머니가 될 뿐입니다. 실패가 실패를 낳고, 또 그 실패가 실패를 낳고. 자신감을 점점 바닥나고 세상의 되도 않는 ‘성공’의 얘기들에 대한 냉소만 쌓여가겠죠. 그래서 얄팍한 ‘성공신화’들에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면, “너의 그런 패배주의가 너를 패배로 이끄는 거야. 당장 너의 열정에 미쳐서 달려보자. 너에겐 아직 젊음이 있으니까!” 하면서 또 다시 달리는 것을 강요하고. 미친듯이 달리다가 이렇게 됐는데 뭘 또 달려요? 정말 어이가 없는 상황이지만 이런 구조를 모르면 불안감에 마냥 달릴 수밖에 없죠.

 


* 여유를 가지고 바른 방법으로 공부할 수가 없다

  공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도, 심적으로 쫓기면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공부하게 될 수 있습니다. 가령 문제를 풀다보니 개념이 미숙해서 혼자서 문제가 잘 안 풀리는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시간을 두고 찬찬히 개념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근데 내일 학원에서 시험을 본대요. 그러면 어떡해요. 공식이랑 유형별 풀이를 암기해야죠. 겉핥기로 이해한 개념을 토대로, 문제의 풀이를 겉핥기로 이해해서, 따닥따닥 암기합니다. 딱 이미 봤던 풀이만 흉내내서 풀 수 있을 정도로만 말이죠.

  사람은 주어진 자원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내려고 합니다. 가령 지금 당장 ‘숙제’라는 과제에 부딪히면, 숙제를 제출까지 남은 시간을 토대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해요. 분명 장기적으로는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해하며 공부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리듬감도 생기는 재미있는 공부이겠죠. 하지만 학원에서 자꾸 내 흐름에도 맞지 않는 공부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부흐름이 엉키고, 계속 단기적인 최선책만 반복하며 학원의 흐름에 질질질질 끌려다니는 겁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고요. 그러고 나서는 열심히 숙제를 하지 않은 자신을 탓하겠지만, 애초에 숙제를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숙제가 강요된 상황이 잘못된 것입니다.

  학교 공부가 뒤처지는 것 같다며, 학원에서 빡세게 공부시간을 잡아서 따라잡겠다고 학원을 등록하는 사람이 아마 엄청나리라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뒤쳐졌다면 오히려 학원을 끊으면 안 돼요. 뭐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할 것을 도와주는 그런 곳이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상위권 위주로 수업하고 숙제를 내주는 학원을 괜히 등록했다간, 상황에도 맞지 않는 공부를 하며 리듬감도 없이 질질질질 끌려다니면서 흥미도 자신감도 말살당할 뿐입니다. 그리고 학원의 흐름을 따라가는 상위권 애들에 대한 쓸데없는 환상만 생겨나겠죠.

  역설적이지만, 천천히 공부하는 것이 가장 빠른 공부방법입니다. 리듬감을 가지고 자기 흐름을 만들어서 가속을 받으며 공부를 할 수 있거든요. 속도감이 붙으면 자신감도 생기고, 재미도 붙고요. 그리고 천천히 공부하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고, 공부내용의 의미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필요합니다. “뒤쳐졌으니 지금부터라도 달려야 된다?” 아 뭐 뒤쳐졌다면 진도를 따라잡기 위해 부지런하게 공부를 해야 하는 건 맞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부지런한 것이랑 조급한 것은 분명 달라요. 꼭 부지런하게 공부해야겠다면 몸은 바쁘고 마음은 여유롭게 공부하도록 하세요. 아무튼 분명 말씀드릴 수 있는건 불안감을 자극해서 공부시간만 늘리는 건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적으로 야자와 보충은 정말 쓸모도 없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저의 경우 대안학교를 나와서 야자랑 보충이 없었는데요, 만약 야자랑 보충이 있었다면 저 대학 한 번에 못 왔을 거예요. 저는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려다 보면 피곤해서 공부가 잘 안 되더라고요, 집에 와서 일단 침대에 누워서 한번 푹 쉬어야지. 억지로 공부시간을 확보한답시고 학교에 잡아놔봤자, 학교의 흐름과 공명할 수 있는 몇몇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학교의 흐름에 질질질질 끌려다니며 시간낭비만 할 거예요. 아니 실제로 그러고 있죠? 나라전체가 공부시간에 미쳐있습니다.


* 시간에 쫓기면 흥미와 자신감이 떨어진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감입니다. 지금 당장 비효율적으로 공부하는 거야 뭐조금 아쉽고 끝날 일이지만, 자신감이 꺾이면 평생의 가능성이 제한당할 수 있거든요.

  

  사람은 주어진 상황에서 행동을 취할 때,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토대로 성공가능성을 계산합니다. 가령 공부의 경우 자신의 능력주어진 시간 등을 중요히 생각하겠죠. 그리고 성공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느껴지는 걸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좁은 여백에서 수학문제를 풀다보면 문제의 원래 난이도보다 어렵게 느껴지죠? 이는 문제풀이에 필요한 사고과정을 처리할 ‘여백’이라는 자원이 적다고 느껴져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번에 사고과정이 많은 문제를 어렵다고 느낀다고 했었는데, 이것 역시 문제에 필요한 사고과정을 처리할 머릿속 여백이라는 자원이 부족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일 겁니다.

  사람이 어떤 과제를 부여받았을 때,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도전의식을 가지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위협으로 느껴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합니다. 가령 시험공부를 할 때 시험까지 남은 시간보다 내가 해야 할 것 같은 공부가 훨씬 많아 보이면 어디로 도망가고 싶어지죠 ㅎㅎㅎ 이런 상황에서 도망을 치는 것을 반복하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과제는 없다’라는 생각에 자신감을 잃게 되고, 도망치지 못하고 내가 해결할 수도 없어 보이는 문제는 계속 물고 늘어지면, 사람은 정신적으로 쇠약해지면서 자신감을 잃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자신감을 온전히 붙들고 살려면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계속 부여 받으면 안 돼요.

  

  이런 맥락에서 입시에서의 시간에 대한 압박은, 우리의 자신감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1순위입니다. 가령 앞으로 시험공부를 하는데 여러분에게 무한한 시간이 주어졌다고 상상해보세요. 꽤 할만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런 맥락에서 공부내용이 우리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 공부내용 그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시간 내에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입니다.

  언제나 얘기하지만 입시에 필요한 공부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대신 뛰기도 전에 날려는 조급함 없이, 큰 그림을 그리며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1초라도 공부를 더 시키기만 하면 좋은 줄 알고, 어떻게든 시간에 쫓기게 만들죠. 가령 어떤 학원은 2주일에 1번씩 모의고사를 본다고 하던데, 이건 정말 폭력적인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매 1주일마다 공부계획을 세우면서 공부내용에 대해 어렵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정말 어렵거든요? 정신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그것도 단기적 최선책으로 공부를 하니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점수가 안 오르겠죠. 그래서 성적이 제자리걸음이면 또 상처받고, 또 다음주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악순환의 연속일 것입니다. 제가 “N월 모의고사가 점수가 수능점수다”라는 말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겁니다. 괜히 중요하지도 않은 모의고사 점수에 의미부여 하며 공부하면 마음이 바빠져서 정신적으로 위축됩니다. 이런 조급함이 실제로 모의고사 점수를 수능점수로 만들 것이고요. 재수하면서 성적이 안 오른다는 말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이렇게 놓고보면 충분히 가능한 것 같죠?

  부족하지도 않은 시간을 부족하다고 사기를 쳐서, 어렵지도 않은 공부를 어렵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요. 어렵다고 느끼니까 혼자 할 자신감을 잃겠죠? 그런 감정을 이용해서 교육을 팔아먹습니다. 계속 팔아먹기 위해 불안감을 주기적으로 주입해야 되니까 시험을 보고 등수를 매기고. 점점 그런 상황에서 자신감을 잃고 불안감은 가중되고, 우울해지다가 앞으로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심한 경우 자살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지니까요. “사교육을 안 하고 혼자 공부를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없다”와 같은 헛소리를 싫어하는 건 이런 이유도 있습니다. 혼자 공부할 수 없게 만든 게 누군데요?


그래서 자신감이 공부를 하는데 왜 중요하냐? 설명해보도록 하죠.

  일단 자신감이 있어야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는 것이 쉬워요. 단순하게 얘기해서 사람은 어렵다고 생각되는 일은 시작하기를 꺼려해요. 자신감이 없으면 공부내용을 어렵다고 생각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공부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는 것만 해도 정신적으로 꽤나 피곤한 작업입니다. 정신적으로 위축되는 상황으로 제 발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시험이 다가오고 1분 1초가 아쉬워 질수록 오히려 책상 앞에 잘 앉지 않게 될 때가 있죠? “공부해야 되는데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요. 이건 아마 앞으로 시험까지 남은 시간동안 시험공부를 성공적으로 해낼 것이란 자신감이 생기지 않아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공부를 하지 않고 노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죠. 그래서 자리에 앉아요. 공부내용이 어렵다는 환상이 걷히지 않은 채로 억지로 자리에 앉기만 하면 공부가 잘 되냐? 약간 과장을 해서, 마치 맹수와 함께 우리에 집어넣어 진 것처럼 겁을 먹을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있어야,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향해 의욕을 가지고 공부를 할 수 있죠. 어차피 공부해봐야 제대로 이해를 못할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자리에 앉으면, 하기가 싫어요. 몇 페이지 깨작깨작 읽다가 핸드폰으로 딴 짓이나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놓고 자책을 하겠죠. “아 오늘도 공부 안 하고 놀았어. 나 완전 미쳤나봐.” 이건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신감을 빼앗고 있는 공부환경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걸 다 학습자의 탓으로 돌리죠.

  이것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의 문제라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 제 얘기를 해볼게요. 제가 2학년 때 어쩌다 3학년 수학과 과목을 듣게 됐습니다. 괜히 어렵다는 생각에 공부를 계속 미루게 되더라고요. 개념이해가 안 되니 숙제가 나올 때마다 자신감이 뚝뚝뚝뚝 떨어지고. 숙제도 매번 답을 배껴서 떼우는 식으로 제출하고. 그렇게 숙제를 대충대충 하면서 공부를 안 하니 계속 진도를 못 따라가고. 결국 중간고사 때 100점 만점에 30점 맞아서 뒤에서 5등 했어요. 저는 분명 고등학교 때는 하루에 수학문제 150개씩 푸는 ‘의지의 인간’이었는데 참 이상한 일이죠? ㅎㅎ

  반면 자신감이 충만하면 시간에 쫓겨도 공부가 그럭저럭 할 만합니다. 그래서 이미 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이 현재와 같이 시간에 쫓기는 구조에서 공부를 계속 잘 하기 유리한 것이고요. 공부가 쉽다고 느껴지면 시간에 쫓겨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공부를 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위축되는 하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반면 어렵다고 느껴질 때는, 시간에 쫓기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불안정한데, 더 불안정해지는 상황을 스스로 찾아가는 행위가 되니까 사람이 할 짓이 못되죠. 이러니 상위권 학생들이 공부는 한만큼 나온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무리도 아니지요. 걔네는 그냥 하기만 하면 되니까. 저도 고1까지는 공부는 누구나 하기만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이런 맥락에서 주기적으로 등수를 매기는 건 상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폭력입니다. 아니 뭐 등수를 매기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최대한 학생들이 그 등수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게끔 도와주어야 해요. 공부에 있어서, 특히 하위권이면 하위권일수록, 기초적인 내용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는 여유와 자신감은 필수적인데 이를 빼앗아가니까요. 당장 공부시간만 무작정 늘리는 것이 도움이 되는건, 시간에 쫓겨도 효과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상위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상위권은 이미 개념도 충분히 숙지가 되고 기본적인 문제풀이 연습이 선행되어있어서, 시간에 쫓기며 문제만 풀어도 문제를 흡수하며 공부할 수 있거든요. ‘비교를 시키면 애들이 자극이 돼서 열심히 하겠지? 공부를 열심히 안 하고 쳐지는 애들한테 빨리 자극을 줘야겠다.’라는 일차원적인 생각 때문에 우리나라 곳곳에서 무시무시한 폭력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위축되는 공간에 몇 시간씩 갇혀서 딴 짓하고, 딴 짓하면서 부모님께 죄책감 느끼고. 심한 경우에는 ‘엄마 아빠 죄송해요’하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도 있고요... 왜 다들 잘못도 안 했는데 죄인이 되고 있는 걸까요? 흔히 선생님이나 제도교육에 삐딱한 친구들을 ‘반항아’, ‘문제아’라고 하는데요, 어쩌면 이와 같이 폭력적인 교육환경에서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감을 유지하려는 것이 최소한의 자기방어인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공부라는 가치에 의미를 부여해서, 비교로 인한 폭력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했다간 미쳐버릴 테니까요.

  

  저는 재능은 흥미와 자신감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해봐요, 공부를 잘 하는 애들이 무슨 1초에 2초씩 느낄 수 있는 시간능력자라도 될까요? 다 한 순간에 하나의 정보밖에 처리할 수 없는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정보처리와 행동의 방향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향에는 흥미자신감이 정말 중요합니다. 흥미가 있어야 계속 시도하고, 자신감이 있어야 실패에 위축되지 않고 계속 도전합니다. 그리고 실패를 거듭하며 배워나가겠죠. 그렇게 무언가를 잘 하게 되고, 그걸 두고 우리가 ‘재능’이라고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맥락에서, 인생의 자신감을 찾고 하위권에서 상위권으로 올라가는 사례들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 맥락에서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계속 시간에 대한 압박을 주입시키는 것은 폭력입니다. 시간에 쫓기니 어렵지도 않은 공부가 어렵다고 느껴져서 자신감을 잃죠. 그리고 ‘어려운’ 공부를 척척 해내는 상위권에 대한 쓸데없는 환상만 생겨날 것이고요. 입시가 끝난 후에도 공부가 어렵다는 인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뭐 공부에 대한 자신감만 잃는다면 그나마 괜찮겠는데, 인생에 대한 자신감을 빼앗길 수도 있죠. 입시에서 워낙 공부를 못하면 무능력자 취급을 하면서 비교하기 좋게 등급을 딱딱딱딱 찍어대니까. 이런 등수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해도 달리는 것만 강요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할 심적 여유를 주지 않죠. 저도 고3때 시간에 쫓기며 공부하면서 잃었던 수학에 대한 자신감이 아직까지 제대로 회복되지를 않네요. 이렇게 빼앗긴 자신감으로, 한 인생의 가능성이 평생 제한당할 수 있는 겁니다.


  ‘공부를 많이 ‘시켜야’ 애들이 공부를 하고, 그래야 인재가 육성되어 나라가 부흥한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비교로 자극을 시켜 공부를 하도록 쥐어 짜야한다.’ 같은 헛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는데요, 시간에 대한 압박은 그 잘난 놈의 ‘인재양성’ 차원으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재를 죽이면 죽였지. 공부 외에 무엇을 할려고 해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대학만큼 가시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게 없거든요. 당연한 겁니다. 원래 짧은 시간 내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걸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니 공부도, 그렇다고 공부 외에 다른 것도,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못한다고 착각하게 되겠죠. 대체 얼마나 많은 인생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 쓸모없는 시간제한 때문에 가능성이 짓밟히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시간을 느끼기 위해 우리에겐 감정이 존재한다

  이상적인 얘기를 냉소하게 되는 이유는, ‘이런 생각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지금까지 그 잘난 놈의 ‘현실적인’ 얘기들이 얼마나 ‘현실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지 잘 알아 봤으니, 이제는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이상적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시간에 쫓기는 것은 입시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시간에 대한 압박은 계속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에요. 지금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을 누군가를 상상하며 ‘아 공부해야 되는데’하며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듯이, 나중에는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누군가나 ‘앞서가고’ 있을 누군가를 상상하며 막연한 불안감을 느낄 겁니다. 이런 불안감 때문에 우리는 도저히 한순간도 제대로 쉴 수가 없습니다.

  물론 다들 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공부 때문에 놀지 못한다’고 변명할 수도 없고요. 하지만 마음 편히 놀고 있습니까? 여가는 도피의 시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여가가 도피적인 성격이 심해요. 여가시간이 불안감을 직면해야 하는 현실에서 잠시 도망쳐서 잊는 시간이 되고 있죠. 술, 게임 등등. 여담으로 게임중독이 문제니 뭐니 하면서 게임 셧다운제를 실시하니 안 하니 하는데, 저는 근본문제는 게임이 아니라 가상현실로 도피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경쟁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이 쫓기는 마음으로는 될 일도 안 되고,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효율이 중요한 것은 앞서 잘 알아봤죠. 하지만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면 마냥 시간만 많이 투자하면 능사일 것 같거든요. 그래서 조기교육이니 뭐니 하는 이름을 붙여서 공부시간에 대한 압박이 점점 어린 나이까지 확산이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유치원생들이 다니는 영어학원이 있는데, 그 영어학원 내에서는 한 달마다 레벨테스트를 해서 반을 가른대요. 심지어 그 학원을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도 있고요. 이게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지만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일찍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 식의 궤변 때문에,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아이를 방임하는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불안감에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고요. 뭐 여기에다 대고 ‘결국 시험 전까지만 충분히 공부하면 되니까, 미리부터 굳이 서두를 필요 없다’ 식으로 말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굳이 여기 뭐 말이 필요합니까?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나 돼요? 나라 전체가 공부에 미쳤어요.

 

     

  경쟁주의 사회에서는 성공을 위해서 1분 1초를 효율적으로 ‘써야’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묻고 싶습니다. 무엇을 위해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졌을까요? 1분 1초 효율적으로 ‘할일’ 들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가 태어났을까요? 우리의 존재 이유가 고작 효율적인 ‘할일 기계’가 되기 위함일까요?

  우리는 기계가 아니에요. 우리는 인간이에요. 할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기계도 할 수 있어요. 우리에게 감정이 주어진 것은, 우리가 기계보다 값진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시간은 쓰기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감정이 존재하고 것이고요. 시간을 ‘쓰기만’ 해서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어요. 여가는 ‘할일을 하지 않는 도피의 시간’이나, ‘할일을 하기 위한 충전의 시간’이 아닙니다.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따사롭고 단비 같은 시간들이지요.

 

    

  입시에 필요한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말을 자주 했지요. 이 말은 다르게 얘기하면, 학창시절에 공부에 투자해야 되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게끔 교육과정이 짜여있다는 것이에요. 중학교과정을 제대로 이수했다는 가정 하에, 효율적으로 공부를 한다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지식을 전부 머리에 집어넣는데 넉넉잡아 1년~1년 반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등학교를 3년 동안 다니는 것은, 공부가 단순이 머리에 지식을 쑤셔 넣는 재미없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고, 또 학교가 공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러기에 매년 2번씩 방학이 존재하는 것이고요.

  저는 나이마다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색깔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기에는 청소년기에만 느낄 수 있는 풋풋한 행복과 감정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시간이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들이라고 생각하고요. 방학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다양한 경험들을 하며 느낄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자유의 시간을 뒤쳐진 공부를 따라잡는데 쓸 수도 있겠지만, 절대로 방학이 ‘역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고3 여름방학때 하루에 수학문제를 150개씩 풀면서 비인간적으로 공부해야 했던 이유는, 제가 고3때 공부의욕을 잃어서 공부를 안 하다가 수능을 벼락치기로 공부했기 때문이었어요. 꾸준히, 그리고 ‘정상적’으로 공부하면 ‘공부할 것 다 하고’도 여가를 즐길 수 있어요. 절대로 여가를 즐기는 것이 ‘학생의 본분’을 잊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가 공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 것이 ‘학생의 본분’도 아니고요.

 

    
   

  제가 이런 식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에게 ‘지금은 청춘을 즐겨야할 귀중한 시간이니 공부를 하지 말라’‘바람을 집어넣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공부시간에 대한 환상 때문에 공부가 지나치게 강요되어서 다들 ‘공부는 누가 시키지 않으면 하기 싫은 것’ 이라는 인상이 박혀서 그렇지, 공부 역시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가 비록 학문에 편중되어 있기는 해도, 흔히들 생각하듯 ‘대학가는 데만 필요한’ 형식적이고, 쓸모없는 것들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우리가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이 땅을 먼저 살고 간 선조들의 지혜이지요. 다만 우리는 공부내용을 느끼는 것 말고도 다양한 것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오감이 있는 것은, 시간을 다양한 색깔로 느끼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위에서 비효율적으로 공부하는 케이스와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케이스를 열심히 설명한 것은, 비효율적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러분께 ‘시간을 최대한 아낄 수 있는 최고의 효율로 공부하라’ 식의 마음 답답해지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비효율의 늪에 빠져서 해도 해도 끝이 없어 보이는 공부로 막막해하고 있는 분들께, 가능성과 희망을 제시해드리려는 겁니다. ‘1분 1초를 아끼지 않으면 나중에 뒤쳐진다’라는 생각은, ‘학생으로서 가져야할 올바른 생각’이 아닌, 필요이상의 긴장감과 불안감을 조성하여 공부의 리듬과 탄력을 말살시키는 궤변에 불과하다는 것이에요. 1분 1초 긴장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수험생의 본분을 잊은 ‘미친’ 것이 아니라, 공부를 탄력적으로 하게하는 현명한 자세라고요.

 

    

  그러니 이런 궤변에 휘둘려서 여가시간을 도피시간으로 전락시키지 마시고, 리듬감 있게 공부하시고 여가시간을 당당히 느끼시라는 것입니다. 긴장감이 없는 상황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시간을 느끼세요. 잠잘 거 다 자고 적당히 놀면서도 공부할 것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도둑놈 심보도 아니고요. 건강한 정신에서 효율적으로 공부를 하기위한 현명한 자세입니다. 이 말이 숨 쉴 틈 없어 보이는 앞으로의 수험생활에, 더 나아가서는 앞으로의 인생에 희망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할 일이 구체화되지 않고 막연하면 사람은 불안감을 느낍니다. 1분 1초 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망망대해에서 열심히 노만 젓는 듯한 막막함만 가져다줄 뿐입니다. 공부시간에 대한 환상은 우리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공부 그 자체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수험생도 인간입니다. 인간이기에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가지고, 인간이기에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권리를 가집니다. 시간은 공부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시고, 공부외의 시간을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시간들은 정말로 의미가 없어집니다. 만일 제가 입시를 하며 공부와 관련 없는 저의 모든 고민들을 부정해버렸다면, 지금 이 칼럼도 존재할 수 없었겠죠. 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건 학교를 떠나서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시간들을 소중히 한다면, 이는 훗날 다른이와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해줄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잊지 맙시다.

우리는 모두 시간을 느낄 수 있는 한명의 인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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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고3이라니 · 488635 · 15/02/07 16:53 · MS 2014

    공감하는것도 있고
    나름의 비판...은 아니고요
    혹시나 이글을 읽고
    남들보다 많이 공부하지 않고 좋은 등급을 맞을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까봐...
    남들보다 무작정 어거지로 많이할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최소한의 임계시간은 필요하더라고요..머리가 좋은사람들은 예외.;.
    그리고 어려운 문제는...
    저는 이렇게 생각이 드네요 물론 수능에는 중요한 문제가 나오지 어려운 문제가 나오진 않겠지만 흔히 말하는 킬러문제같은 문제를 많이 접해보는것은 괜찮다고 생각이 드네요
    비록 수능이 중요한걸 물어보지만 그 중요한걸 제한시간이 걸린 타임리밋에서 처음보는 문제를 풀어내려면 무작정 어려운 문제보다는 정말 크리티컬하게 중요한 부분들을 이용해서 어려운 문제를 많이 풀어본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당연히 어거지로 공부할 필요는 없는것 같네요
    현실인식과 동시에 공부를 시작하면 게임보다 공부가 재밌네요(저만 해당되는듯)

  • 매롱히히 · 310058 · 15/02/16 00:54 · MS 2017

    당연히 맞는 말씀입니다.
    최소한의 임계시간은 분명히 있고, 이 글이 그것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현행 입시에서는 그 임계시간이 비효율적인 공부방법을 만연하여 부풀려져 있고, 그 속에서 효율적이고 정상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천재취급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제가 말하는 어려운 문제란 난이도가 높고 배울점이 많은 문제가 아닌, 시험에도 나오지도 않을 지저분한 문제였어요. 물론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해서 어려운 문제풀이 연습을 할 단계가 되었다면 어려운 문제푸는 연습을 접하는 게 맞는것이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 이런고3이라니 · 488635 · 15/02/07 16:55 · MS 2014

    아 공부시간에 대한 환상은 잘못된 것이죠...
    12시간 공부해도 ! 얻어간게 없다면 3시간 공부해서 얻어간게 훨씬 시간적 질적으로 이득이니깐요
    저도 작년에 시간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이라...뼈저리게 느낍니다ㅠㅠ

  • 야레야레 · 505797 · 15/02/07 16:59 · MS 2014

    서울대 물천에 진짜 천재들많나요?

  • 매롱히히 · 310058 · 15/02/16 01:00 · MS 2017

    ㅋㅋㅋㅋ 글쎄요
    천재를 뭐라고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것 같기는 합니다

  • 라히코 · 542635 · 15/02/11 20:34

    좋아요 삼천개 드리고 싶네요..감동;

  • 매롱히히 · 310058 · 15/02/16 01:01 · MS 2017

    ㅎㅎㅎ 감사합니다!
    도움 되셨길 바랍니다

  • Pink Luv · 488236 · 15/02/11 22:29 · MS 2014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분이 계셔서 놀랍네요!

  • 매롱히히 · 310058 · 15/02/16 01:01 · MS 2017

    !

  • 미분적분공도벡 · 475316 · 15/02/11 23:14 · MS 2013

    통념과 어긋나는 내용이 많지만 글을 너무 잘쓰셔서 납득이 가네요 정말 잘읽었음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네요

  • 매롱히히 · 310058 · 15/02/16 01:03 · MS 2017

    불안감이 많이 사라지셨다니 좋네요 ㅎㅎ
    화이팅입니다

  • realbeckham · 530527 · 15/02/14 21:07 · MS 2014

    잘읽었습니다 !

  • 매롱히히 · 310058 · 15/02/16 01:03 · MS 2017

    감사합니다!

  • 허허허헣헣 · 550914 · 15/02/24 20:44 · MS 2015

    감동입니다..ㅜㅜ 제가 시간에 쫓겨서 스트레스 받던 사람이었는데 이런 칼럼 써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

  • 파괴신 · 330098 · 15/03/03 00:24 · MS 2010

    지리는 필력입니다... 끌려가듯 공부하는사람의 심리를 와닿게 묘사하시네요

  • 한동건 · 555082 · 15/03/23 23:28 · MS 2015

    감사염

  • 아이로봇 · 557331 · 15/03/25 23:34 · MS 2015

    솔직히 명칼럼..

  • 뭉치뭉뭉 · 529051 · 15/03/29 20:18

    아... 오늘 모의망치고 기분 개꿀꿀한데
    지금까지 제 공부방식....님이 말씀하신거랑 똑같네요.... 1분 1초 아끼며 어거지로 넣기... 깨달음 얻고 갑니다.

  • 이끼예끼 · 534448 · 15/04/14 18:22 · MS 2014

    이곳에서 이분 글을 볼 줄은ㅋㅋㅋㅋ 고등학교 올라가는 시점에도 큰 충격을 주셨는데 이번에도 좋은 충격 감사드려요!

  • Kaist 16학번 · 552740 · 15/04/19 22:48

    ㅇㄹㅇ

  • 란타넘 · 560739 · 15/05/04 15:16 · MS 2018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 akiyama · 405298 · 15/05/22 14:12 · MS 2012

    감사합니다.

  • x6dSWbouiDByFp · 615929 · 15/11/30 02:52 · MS 2015

    고맙습니다

  • 테리어몬 · 741462 · 17/06/04 06:40 · MS 2017

    지금 읽어도 좋은글 공감합니다

  • 공유된정의관 · 753462 · 17/09/17 07:25 · MS 2017

    감사합니다

  • 매롱히히 · 310058 · 18/08/15 23:50 · MS 2017

    한동안 오르비를 들어오지 않아서 댓글확인이 마않이 늦었네요
    댓글 다셨던 분들중에 이제 수험생이 아닌 분들도 계시겠네요 ㅎㅎ
    하나하나 대댓글 달고 싶지만 많이 늦은것 같아 그냥 댓글 하나만 달겠습니다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 쿠키부스러기 · 953267 · 22/05/13 23:56 · MS 2020

    이 글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글에서 나오는 시간에 쫓겨 조급해하느라 비효율적인 공부를 하고 있는 게 지금의 저라서 너무 놀랐어요. 올바른 방향을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정말 명글이라고 느껴져요.ㅠㅠ

  • 뤼케이온(noonr) · 897987 · 06/09 19:08 · MS 2019

    감사히 잘 읽고 또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