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 이야기 27편 - 낙엽이 지기 전에
전쟁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각 국이 치열하게 펼쳤던 외교전입니다. 외교전은 그야말로 전쟁의 전초전으로서, 전쟁의 발발 전에 이미 세력간 구도를 형성시키면서 자국의 이익과 안전을 보호하거나, 적의 국력을 약하게 만드는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특히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 독일 제국은 소국으로 갈라져있던 나라를 민족적 명분으로 통합시킨 후, 유럽의 강대국인 프랑스를 이기고 제 3제국을 선포하는 등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습니다. 철혈재상으로 알려진 오토 폰 비스마르크 수상은 독일 제국의 통일과 외교에 있어서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우리가 보는 이미지와는 달리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영국을 자극하지 않고, 프랑스를 고립시키기 위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외교론을 펼친 인물입니다. 그는 독일은 철저하게 식민경쟁을 포기하고 국내 공업, 산업 역량을 발전시키면서 외교적으로 프랑스를 고립시켜서 약화시킬 계획을 세운 주도면밀한 인물입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관료제' 또한 이 시기에 등장합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D%86%A0_%ED%8F%B0_%EB%B9%84%EC%8A%A4%EB%A7%88%EB%A5%B4%ED%81%AC )
외교적으로도 상당한 고단수였던 비스마르크는, 만약 독일이 러시아를 쓸데없이 자극하면 러시아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독일을 양쪽에서부터 공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유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제국과도 긴밀한 동맹을 유지하면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서로 다투는 것에 적극적으로 중재도 하면서 러시아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비칩니다.
또한 당시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배 경쟁에 치열하던 시기였으나, 독일은 식민경영을 위한 해군을 상대적으로 덜 중시했습니다. 만약 독일이 공격적으로 해군을 양성할 경우, 대영제국을 크게 자극할 우려가 있고 이는 곧 영국과 프랑스의 동맹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프랑스의 동지가 될 만한 국가들과 유연한 외교를 통해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유럽의 질서는 곧 독일이 바라는대로 흘러가는 듯 했습니다..... 만 항상 절대라는건 없군요.
독일의 신임 젊은 황제 빌헬름 2세는 자기보다 더 나이도 많고 능력과 경력이 뛰어난 유능한 부하가 계속 눈에 채였습니다. 호전적이고 혈기왕성한 신임 황제는 비스마르크의 소극적 외교를 겁쟁이라고 비하하였으며, 경쟁적으로 식민지 건설에 참여하고자 해군에 책정된 예산을 대폭 늘리는 공격적인 조치를 이어나갑니다.
외교와 정치에서 신임 황제와 마찰을 빚던 비스마르크는 결국 밀려나 해임되었고, 비스마르크가 주도해온 질서는 급변하기 시작합니다. 독일은 매우 공격적인 외교와 군사력을 과시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프랑스와 영국이 서로 동맹을 맺고, 또 러시아도 프랑스와 이어지는 결과로 치닫습니다.
비스마르크가 철저하게 고립시킨 프랑스는 독일의 신임 황제의 혈기왕성한 대외팽창정책 덕분에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독일은 동쪽에는 러시아, 서쪽에는 프랑스를 맞댄 최악의 양면전쟁 가능성을 고려해야합니다.
(프랑스는 영국, 러시아와 동맹을 맺으면서 독일을 상호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됩니다. 해군력이 빈약한 독일은 바다에서 영국에게 치이고, 육지에서는 프랑스군과 러시아군을 양쪽에서 맞딱뜨리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합니다.
https://www.google.com/search?q=1%EC%B0%A8%EC%84%B8%EA%B3%84%EB%8C%80%EC%A0%84+%EC%A7%80%EB%8F%84&sxsrf=ALeKk00y20neTlhI1aWQlXETYD_zuqbBYA:1590516202518&source=lnms&tbm=isch&sa=X&ved=2ahUKEwiEuIrKjtLpAhWSFIgKHaIlBUQQ_AUoAXoECBIQAw&biw=1920&bih=937#imgrc=3dM5MEub43BNCM )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사상은 '공격제일주의, 선제공격의 우위' 이론이었습니다. 누구라도 더 빠르게 많은 병사를 모집하고, 전광석화처럼 적의 영토에 쳐들어가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군사작전은 적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세를 보이면 곧장 더 빠르게 대응하여 적의 수도까지 진격하는 계획이 전제되었습니다.
그래서 독일군은 '슐리펜 계획'이라는 작전을 세웁니다. 만약 전쟁이 나면 먼저 프랑스에 모든 병력을 쏟아넣고 빠르게 프랑스를 격퇴, 점령한 뒤 곧장 독일로 돌아와서 늦게 동원되어 쳐들어오는 러시아군을 막아낸다는 계획이었죠.
당시 러시아는 많은 인구와 병력의 양에서 강한 존재감을 뽐냈으나 타국에 비해 철도와 수송 시스템이 빈약했기에, 분명 러시아의 총동원령 속도는 느릴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나름 합리적인 요소를 반영하여 세워진 슐리펜 계획은 어이없게도 주객이 전도되어, 이 작전 때문에 외교적 가능성을 줄여버리는 장애물이 됩니다.
만약 프랑스는 가만히 있는데 러시아만 선전포고를 한다면? 이 때는 슐리펜 계획에 따라 프랑스쪽에 밀집된 병력을 다시 동부로 수송해와야 합니다. 그 많은 병력을 이제 반대편으로 갑자기 보내라는 계획은 그저 무질서와 혼돈일 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군사 작전이 외교적 가능성을 억압하여, 독일은 전쟁이 나면 무조건 프랑스를 먼저 쳐야하고, 그럼 프랑스에게 절대 전쟁을 피할 수 없는 무리한 조건과 압력을 가해야 했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요. 외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명피해를 내지 않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 이제는 거꾸로 군사작전이 외교를 쥐고 흔드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당시 공격우선주의 사상은 유럽에 만연했기에, 모든 유럽 국가들은 자국의 생존을 위해서 적보다 빨리 동원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항상 긴장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혹시 누군가가 실수로 총성을 울려버리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소용돌이에 다 같이 빨려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하는 오스트리아 황태자 가족. 세르비아 민족주의 청년이 쏜 그날의 총성은 사망자만 1천만에 이르는 대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B%9D%BC%EC%98%88%EB%B3%B4_%EC%82%AC%EA%B1%B4 )
사라예보 사건 직후,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를 압박했으며 군사적 조치 또한 가능하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런데 세르비아와 긴밀한 관계에 있던 러시아는 결코 군사대국인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침략하는 꼴을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따라서 러시아는 오스트리아가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경우 뒤에서 러시아군이 오스트리아로 진격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이렇게 되면 독일 또한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주요 파트너였기에, 러시아가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한다면 당연히 독일군이 나서서 러시아와도 싸울 것입니다.
러시아가 이렇게 독일과 오스트리아에게 공격을 받는다면, 이미 이야기가 되어있던 프랑스도 바로 선전포고를 하고 독일군의 빈 서쪽을 침공할 것입니다. 또한 영국군은 프랑스 편에서 독일과 싸울 것입니다.
사라예보의 총성이 울린지 며칠 안되어 이 시나리오는 그대로 현실이 됩니다. 결국 독일은 원래 계획한 대로 슐리펜 계획을 발동하여 프랑스를 대대적으로 침공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전광석화같은 진격은 없었습니다. 보병의 체력은 쉽게 고갈되었고 보급은 따라가질 못했습니다.
보병의 앞을 막는 것은 무수한 참호와 철조망, 그리고 기관총입니다. 이 3가지의 등장으로 전쟁의 양상은 빠른 공격이 주도하기보다, 방어자가 더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철조망에 가로막힌 보병은 쏟아지는 기관총탄에 그대로 분쇄됩니다. 이후 1차 세계대전에서는 정말 작은 의미없는 지역을 두고도 몇십몇백만명씩 인명이 죽어나가는 처참한 전투를 계속 치르게 됩니다.
(인류는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장기전, 총력전을 경험하게 됩니다. 낙엽이 지기 전에 곧장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리라는 기대를 품고 입대한 젊은이들은 많은 수가 전사하였고, 4년이나 지나서야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https://namu.wiki/w/%EC%A0%9C1%EC%B0%A8%20%EC%84%B8%EA%B3%84%20%EB%8C%80%EC%A0%84 )
1차 세계대전은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사건입니다. 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 무솔리니, 도조 히데키 등의 전범들을 비롯하여 특정 세력에게 전쟁 발발의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에서는 그 누구도 전쟁의 가해자이거나 피해자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아직도 어디가 전쟁의 책임을 져야하는지 수많은 학자들의 논쟁대상입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 각 국의 외교전이 전개된 양상을 보면, 1차 세계대전은 충분히 일어날 필요가 없는 너무 큰 전쟁이었습니다. 단지 남들보다 빨리 동원을 해야만 자국을 지킬 수 있다는 두려움과 압박감, 적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모호성 등의 요소 때문에 정치인과 외교관들은 실책을 범했습니다.
이 때 각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생존을 위해 전쟁을 시작하였고, 자신들이 처한 입장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고 스스로 자부합니다. 그러나 훗날 학자들이 비평하길 당시 외교관들은 무능했고, 또 거꾸로 정치인이 군인에게 주도권을 뺏기고 끌려다니는 경우도 있었으며, 상호국가간의 충분한 교섭과 타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1차 세계대전은 대표적으로 위기 관리의 실패로 벌어진 전쟁으로 평가받습니다. 충분히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당시 유럽인들은 전쟁을 통해 그동안의 묵혀있던 부패들이 씻겨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리라 기대하였습니다. 물론 정말 전혀 다른 시대가 열리긴 했습니다만 결코 이상적이지 않은 세계였습니다.
이렇게 외교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았으나 위기 관리에 실패한 이유로 발발한 1차 대전은 한국의 정치와 외교에도 큰 교훈을 시사합니다. 바로 북한 문제 때문입니다.
북한은 아직도 명목상 남한과 전쟁 중의 상태에 놓여있으며, 한쪽은 아시아의 부강한 선구적인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다른 한쪽은 인권침해가 만연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독재 국가입니다. 특히 북한은 이러한 상황에서 핵무기에 집착하면서 생존을 보장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혹시 이상한 짓을 한다면 곧장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 엄포도 놓고, 전쟁 재개 징후를 포착하면 곧장 보복할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가지 딜레마가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발사하려 한다면, 그 징후를 어디에서 포착하고 얼마나 중요하게 판단해야할까요? 북한이 대규모 전쟁준비를 한다면, 이것을 단순히 무력시위의 수준으로 보고 적당한 응징계획을 세워야 할까요, 아니면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해야 할까요? 만약 북한은 그렇게 심각한 의도가 아닌 행동이었지만, 한미가 매우 심각하게 판단하여 전면전을 선포할 경우 이에 북한도 자연히 전면전을 선포할 것입니다. 마치 1차 대전처럼 서로 전쟁 속으로 빨려들어가버리게 되는 것이죠.
그 누구도 전면전을 하고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서로에 대한 무력시위가 강도가 계속 높아지고 고조됨에따라 결국 매우 큰 전쟁으로 급격히 전개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까지 끝내야 할까요? 또 무조건 적으로 양보를 한다면, 오히려 적이 자신감을 얻고 더 큰 무력시위를 하거나 과감하게 전쟁을 일으킬 위험성도 있습니다. 2차 대전의 히틀러가 그랬거든요.
앞으로 한국이 북한이라는 위험을 적절히 관리하면서도, 경제적으로 덜 타격입으면서 효과적으로 북한을 제어할 수 있는 외교적, 군사적 역량은 필수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위험에 대해서 긴장의 끊을 놓치않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1차 세계대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해당 글은
<낙엽이 지기 전에>, <외교상상력> 김정섭 저
<불가사의한 국가, 북한의 과거와 미래> 빅터 차 저
을 영감으로 작성되었으며, 참고용으로 추천드리는 영상은
유튜브 '함께하는 세계사'님의 "20세기 대재앙의 시작, 1차 세계대전은 왜 일어났을까?" 를 추천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CaZGmovGGw
전쟁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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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1세 잘못 적은신가 같습니다.
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2세인데 1세라고 잘못적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