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cri [2] · MS 2002 (수정됨) · 쪽지

2016-11-09 21: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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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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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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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생 시절 파견 나간 병원에서 실습을 돌 때 기형아를 임신한 40대 산모를 만났습니다. 


뒤늦게 첫 아이를 임신했는데 양수검사에서 에드워드 증후군이라는 치명적인 염색체 질환 판정을 받았죠. 돌잔치도 치르지 못하고 내내 수술만 하다 아기를 잃게 될 확률이 95%였습니다. 출산을 하더라도 아이의 외모는 흉측할 것이고, 산모의 건강도 우려되며, 얼마 못 살 아기에게 들어갈 의료비도 고려해 의료진은 임신중절 수술을 권했습니다.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기형은 제법 빨리 발견되기 때문에, 중절 수술을 한다면 상대적으로 후유증이 크지 않을 것인 반면, 만약 임신을 유지한다면 그것은 임신 기간의 상당 부분을 아이가 기형임을 인지하고 절망한 상태에서 이끌어 나가야 할 것임을 의미했죠. 매달 태아 검사를 할 때마다 초음파 화면 앞에서 휘둥그래지는 의사의 얼굴을 마주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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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라 하면 위선자 같고, 아파도 일어나야 한다면 꼰대 같아서, 지난 3년을 말없이 보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제가 만든 사이트에서도 이제 나이가 많다고 낫미인가 뭔가에 차단을 당하는 걸 보고, 이 기세라면 2000년생들이 수능 시험을 본다는 후년 쯤이면 계정도 빼앗길 것이 분명해 유언같은 글을 하나 써볼까 합니다: 아픈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설마 언어 영역 65문제를 100분 안에 풀 수 있는 꿀팁을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죠? 요즘 수능 시험에서는 국어 영역이라면서요. 문제도 45개밖에 안 되고.


글이라는 건 저자와 독자 간의 대화인 셈이죠. 저자는 항상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독자가 처한 상황이 매번 다르니 글이 독자 마음의 어느 구석을 건드리게 될지도 매번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수능 시험을 보고 온 다다음날 쯤 다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이 글이 생각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혹여 마음이 힘든 사정이 되거든 이런 글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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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 개인사를 이야기해 볼게요.


기억이 닿는 한계선 상의 과거로부터 스무살 문턱까지의 제 삶은, 단 하루만에 치러지는 수능 시험에 의해 그 가치를 평가받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첫 판정은 그간의 인생이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죠. 삶의 맨 밑바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겪어볼 기회를 얻긴 했으나, 왜 그런 불행을 겪어야 하는지 단 한 번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첫 시험 당시 기대했던 선을 훨씬 뛰어넘는 보상이 있어야만, 예정에 없었던 나의 뒤쳐진 1년과 그 기간을 가득 메운 고통 사이에 인과라는 다리를 놓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억울함과 분노만이 가득했죠. 날씨가 좋기만 하면 벼가 여물지 않는다. 신은 시련을 통해 축복을 예비한다. 그런 격언에 간신히 의지하며 한 해를 보냈습니다.



..


그리고 더해진 1년도 아무 가치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죠.   그후 1년이란 - 


신이 내 삶을 버렸는데, 이토록 약한 인간인 내가, 어떻게 내 삶을 지킬 수 있겠는가를 반복해서 묻는 한 해였습니다. 인생이 왜 이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지 물었지만, 어디에도 답은 없었습니다. 불쑥불쑥 삶을 중단하고 싶은 욕망이 타올랐죠. 타고난 신자는 못 되어서인지 더 큰 축복을 예비하기 위해 더 큰 시련을 준비한다고 스스로를 기만할 수는 없었습니다. 점점 삶을 이끌어가기 위한 의지는 약해졌고 삶을 산다기보다는...  삶이 흘러가는 곳으로 내 자신을 던져둔채 간신히 어딘가에 위탁한 호흡만이 사계절을 빼곡히 채웠습니다.




그 다음 차례에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 어떤 인과관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했어도 또다시 버려질 수 있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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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 보면 그시절의 기억이란 처음 수능 시험장에서 받아든 "수리탐구 영역 (I)"이라는 문구처럼 흐릿합니다. 때로는 별처럼 높고, 때로는 심해처럼 깊었던 감정의 파고도 이제는 무뎌져 가네요.


20대 중반에는 명문대 출신이라는 것이 삶을 얼마나 훌륭하고 다채롭게 만드는지 내 자신에게 항시 되물어보며 살았습니다. 20대 후반에는 한없이 공정한 이 세상의 인과율은 노력을 반드시 보상하는 것임을 귀납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살았죠. 30대 초반에는 어떻게 하면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부로 변환할까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



... 삶의 매 페이지와 글자 하나하나가 얼마나 생동감 넘치는 것인지 느끼며 삽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의 연속임을 확인하면서요. 그 순간이 가장 높고 행복한 지점이건, 가장 낮고 끔찍한 지점이건 간에 나는 나의 삶을 정말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부딪힌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그 다음 순간을 향한 여정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시험에 도전하든지, 벽을 인정하고 대입 시험이 아닌 다른 길을 가든지, 아직 여러분의 인생은 20% 밖에 진행되지 않았고, 나머지 80%는 여러분이 밑바닥을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이를 갈며 살지 않더라도, 견딜 수 있는 한계라고 생각했던 지난 1년 간의 삶보다 더 힘들게 살지 않더라도, 여러분들에게 어쨌든 삶을 계속 줄 것이고 그것이 어떤 경로로 흘러가건 살아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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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인과율 속에서 보상의 공정함을 찾으려 했습니다. 말하자면 10,000시간을 공부한 사람은 서울대에 갈 수 있어야 하고, 똑같은 재능과 환경 하에서라면 공부를 더 많이 한 사람이 공부를 덜 한 사람보다  ..  다시말해 더 노력한 사람이 덜 노력한 사람보다 더 좋은 것을 가져가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번도 수능 시험을 앞두고 "오르비 여러분 모두 시험 잘 보세요" 라는 취지의 기원을 한적이 없습니다. 제 표현은 항상 "모든 오르비 회원이 공부한 만큼의 점수를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였죠. 설령 행운을 기원할지라도 "너에게만 행운이 따르기를"이지 "모두에게 행운이 따르기를"은 아니었습니다. 모두에게 행운이 따르면 평균이 높아지니 표준점수가 안 올라가잖아요. 


한때는 제가 얻은 대부분의 것들을 좋은 대학을 나와서 얻은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생각에는 그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제가 얻었다고 만족했었던 많은 것들 없이도 제 삶은 꽤 살아볼만 했습니다. 출신 대학이나 쌓아둔 돈과는 별 관계가 없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삶의 순간들이 그간의 삶을 살아볼만하게 만든 대부분의 이유를 구성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당장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마음을 너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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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모는 내내 뱃속의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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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출산일은 예정보다 이르게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그날 산모는 울고, 


아기는 울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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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산모의 결정과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아마도 산모는 삶을 사랑했던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80년 정도 될 것일 삶의 여정 한 가운데에, 몇 시간 정도 함께했던 아기의 삶 그리고 그 아이를 잠시 들었다가 곧 놓아야 했던 산모의 삶에는 그 어떤 책임도, 잘못도, 인과관계도 없습니다. 

삶의 여정과 궤적이란 그러한 것이고 둘은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9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시험을 잘 봤으면 좋겠습니다. 

표준점수 문제에 대해서는 원서를 쓸 때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죠.



설령 시험을 못 보더라도 너무 자책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삶의 여정과 궤적이란 그러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사랑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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