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인정하면 편하다
비롤리: 비지배적 자유는 비자의적 지배가 부재할 경우에도 성립한다. (X) [2023학년도 수능 윤리와 사상 8번 문항]
이 선지를 해설할 때 모 강사는 비지배적 자유는 비자의적이든 자의적이든 모든 지배가 부재해야 성립한다고 말했다. (애당초 이런 해설이 개념적 오류를 떠나 논리적으로 타당한지도 따져 볼 문제이긴 하다.)
이 말은 곧 비지배적 자유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비자의적 지배 역시 없어야 함을 함축한다.
그런데 비롤리는 비자의적 지배, 예를 들면 법의 지배는 시민의 자유 증진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모 강사의 해설은 틀리게 된다.
비지배적 자유는 비자의적 지배가 부재할 경우가 아니라 존재할 경우에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모 강사 측은,
비롤리가 법의 지배 등 비자의적 지배를 일컬을 때 쓰는 ‘지배’는 rule이고, 자의적 지배를 일컬을 때 쓰는 ‘지배’는 ‘dominantion’인데, 자신은 모든 domination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라고 강변한다.
비롤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자의적 rule’ 혹은 ‘비자의적 domination’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기 때문에, domination는 그 말 자체로 ‘자의적 지배’로 읽는 것이 맥락상 타당하다. 그렇다면 ‘모든’ domination가 없어야 비지배의 자유가 성립하는 주장은 옳게 된다.
그러나, 이는 곧 ‘모든 자의적 지배’가 없어야 한다는 해설이 옳음을 의미하지,
자의적 지배와 비자의적 지배가 모두 없어야 한다는 해설이 옳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일까? 애당초 비자의적 domination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비자의적 지배? 그건 그냥 비자의적 rule일 뿐이다. 그러므로 비자의적 지배까지 없어야 한다는 해설을 해 놓고서, 나는 domination에 대해 해설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비자의적 지배가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자동적으로 비자의적 rule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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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23 수능 해설 강의에서 제대로 해설한 걸 보면 모 강사가 이 개념을 모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24 개념 강의를 찍을 때 순간적으로 말이 잘못 나왔을 뿐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단순한 말실수라는 것이다.
오개념을 가르쳤다고 보기에도 좀 무리가 있는 수준이다.
처음에 QnA에서 지적이 나왔을 때 깔끔하게 자기 실수를 인정했다면 문제 없이 넘어갔을 만한 일이다. 단순한 말실수가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말실수한 것을 어떻게든 정당화해 보려고 하니까 이상한 논리가 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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