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ㅅㅋㅌ [1056455] · MS 2021 · 쪽지

2024-12-24 12: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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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수능날 감독관과 맞짱깐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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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4교시 한국사가 막 시작하기 15분 전,

서울 소재 모 고등학교의 13번 시험장.

여느 시험장과 마찬가지로 교실에는 침묵만이 그 자리를 지켰고,

나이가 좀 있으신 여자 감독관 선생님께서 탐구영역 제 1선택 시험지를 제 2선택 시간에 풀지 말라는 형식적인 경고를 막 하실 참이었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그때였다.

감독관 선생님께서 추가적인 질문 사항에 답변을 하시는, 어찌보면 다소 형식적일 수 있던 그 때,

내 대각선 앞쪽에 있던 응시생 한 분이 감독관 선생님께 질문을 건네기 시작했다.


"저, 선생님. 질문이 있습니다."


"네, 학생. 무엇인가요?"


"그, 다름이 아니라 수험표 뒤에 적는 가채점 답안을 적는 것은 제 2선택 시간에 몰아서 해도 되는 것인가요?"


감독관 선생님께서는 약간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다시 말해줄 수 있냐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연세가 좀 있으신 지라 가채점표라는 것을 모르셨겠지 싶었다.

그 학생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는지, 다소 짜증난 듯한 목소리를 애써 숨기며 차분히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제 1선택 시험지의 답안을 가채점표에 적는 것이, 제 1선택 시간이 아니라 제 2선택 시험 시간에 이루어져도 되는 것인지를 말씀드린 겁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이내 감독관 선생님께서는 고민한 듯한 표정으로, 그러나 내심 단호한 듯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건 안 됩니다."


이 여섯 글자는 참으로 무시무시했다. 영어 시간이 끝나고 가라앉은 제 13번 시험장은, 삽시간에 모두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는 혼돈의 장으로 변해버렸다.

그 혈기일지 객기일지 모를 분위기에 취한 채, 나는 불만에 가까운 항의를 내뱉기 시작했다.


"그, 선생님. 그럼 1교시 국어 영역이 끝나고, 2교시 시작 전에 이를 수험표 뒤에 적는 것은 문제가 안 되잖아요?"


"그렇죠 학생."


"그럼 제 1선택과목의 답안을 제 2선택 시험 중간, 혹은 그 사이의 쉬는 시간에 수험표 뒤에 적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 않나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아까보다 조금 뜸을 들였지만, 감독관 선생님의 의지는 분명했다.

전율했다. 아, 이건 분명 잘못됐다. 오르비에서나 보던 소위 '빌런'같은 감독관 선생님이 내 앞에 계신 게 분명할 터이다. 하는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정의감인지 무엇인지 모를 어떤 감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내가 지리 과목이나 역사 과목처럼 암기 위주의 과목을 제 1선택으로 응시했더라면 아마 이런 감정은 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제 1선택과목은 물리학 1, 타임어택을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는 과목인 마당에 나의 당혹감은 한층 배가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냥 따지고 쫓겨나자, 라는, 지금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미친 생각에 휩싸인 채 이렇게 말했다.


"아니 아까는 된다면서, 이건 왜 안 되는 건데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시험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럼 저희뿐 아니라 이 시험장의 모두가 다 부정행위자로 실격처리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이 말을 듣자 주위의 몇몇 수험생 분들도 거들기 시작했다.


"선생님,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수능을 여러 번 응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이 사안에 대해서 질문드린 적이 있는데 그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상황이 이쯤 되자, 완고했던 감독관 선생님의 표정은 어느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학생 여러분. 미안하지만 저희 쪽도 그것과 관련해서는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서, 혹시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안될까요? 한번 시험관리본부를 통해서 확인해 보도록 할게요."


그렇게 교실은 다시금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고, 몇 분이 지나 선생님 한 분이 들어오셨다.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 선생님 한 분이 급하게, 그러나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며 시험장에 들어오셨다. 보아하니 시험관리본부에서 올라오신 선생님일 터였다.

나는 다시 한 번 그 선생님께 정중하게, 그러나 조금의 분노와 정의감이 섞인 채로 다시 한 번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선생님께서는,


"유감이지만 불가능합니다, 학생."


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며 두 팔로 X자를 만들어보일 뿐이었다.


교실은 다시 한 번 항의로 들끓기 시작했다. 당혹감에 가까웠던 일전의 반응보다는 다소 분노에 가까운 반응들이었다.

나 역시도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따지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소리입니까 지금? 제가 일전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 질문했을 때는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는데 이제와서 안 된다는 건 모순 아니에요?"


"그건 지금 확인이 불가능한 사항이죠 학생..."


"아니 그러면 장학사님이라도 불러서 확인하면 될 것 아닙니까?"


"일전에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단 말이에요!"


"일단은 그렇다 하더라도... 시험장에서 문제가 될 만한 행동들은 삼가주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학생 여러분..."


몇 분간의 실랑이가 지났을까, 시간은 어느덧 한국사 시험 1분여 전,

여전히 감독관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감독 선생님들 또한 당황한 표정이 가득했다. 단호하게 말씀하셨던 종전의 남자 감독관 선생님께서도 혹 본인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어하는 모양새였다.

결국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판단한 감독관 선생님께서는 시험관리본부에 내려가 다시금 확인해 볼 테니, 학생 여러분은 진정하고 일단은 눈앞의 한국사 시험에 집중해 달라 말씀하셨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종이 치며 한국사 시험이 시작되었다.

이제 13번 시험장의 모두는 푸는 둥 마는 둥 시험을 풀고서 20여분의 쪽잠을 청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도 분주하게 복도를 오가며 장학사로부터 내용을 전달받는 감독관 선생님들을 실눈으로 보며 몇 분간의 잠에 빠져들었다.


종료령이 울리고 나서, 선생님은 모두가 잠에서 깰 동안 칠판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칠판에 글씨를 다 적었을 무렵, 감독관을 맡은 여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여러분, 칠판에 적어놓은 걸로 보신 분들도 있을 거에요. 방금 본부에 계시는 장학사 선생님께 여쭤보고 와서 급하게 다시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일단은 제 1선택과목 시험 종료 이후 제 2선택과목 시험 응시 전까지 2분간의 시험지 교체 시간은 시험지에 인적사항을 마킹하는 것 이외의 펜 사용 일체가 부정행위에 해당하므로 가채점표 작성 역시 불가하다고 해요. 그리고, 제 2선택과목 응시 도중에 제 1선택과목의 OMR 마킹을 보고 가채점을 작성하는 경우는, 제 1선택과목 시험지만 보지 않는다면 가능하다고 하셨어요."


그제서야 학생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마치 잃어버렸던 핸드폰을 다시 찾은 것마냥, 모두가 안도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감독관님은 이내 조심스레 말을 잇기 시작했다.


"저희도 시험관리본부에서 가채점 관련 사항을 제대로 듣지 못했고, 관련된 사항 역시 아예 규정에 없었기 때문에 이 일로 인해서 탐구 영역 응시를 앞두고 감정적으로 불안해져서 시험에 영향을 주었던 것에 대해서 시험 감독관으로서 정말 미안해요. 여러분이 물어보신 가채점 관련해서는 최종적으로 부정행위가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너무 신경쓰지 마시고, 평소 하던 대로 시험 잘 보시길 바랄게요."


이 말을 끝으로 교실에 맴돌던 미묘한 대립의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고, 학생들은 안심하며 탐구 정리노트를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4교시가 끝나고, 시험장에서 나가도 좋다는 지시가 내려오자 하나둘씩 학생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막 짐을 싸고 나가고 있는데, 때마침 복도에 아까 그 남자 감독관 선생님이 서 계셨다.

아까 전에 흥분해서 막 따졌던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말이나마 드려야 할 것 같았던 나는 조심스레 그 선생님께 가서 말을 걸었다.


"저, 선생님, 아까 13번 시험장에서 시험 도중에 항의했던 그 학생입니다."


"아... 네가 아까 그 학생이었구나?"


"네 그렇습니다. 아까는 제가 너무 흥분했습니다. 순간 감정 주체를 못하고 흥분한 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괜찮아. 시험 잘 봤으면 그걸로 된 거지 뭘. 수고했고, 오늘 집 가서 맘 놓고 편히 쉬거라."


문득, 이 감독관 선생님들 또한 어떤 학교의 선생님이자 누군가의 담임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랬기에 혹시 모를 학생들의 실수를 막고자 더욱 단호하게 나오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넵 선생님. 감독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라고 말하며, 나는 조금의 미안함과 안도감을 느끼며 시험장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그날의 사소하다면 사소했던 가채점표 사건은

피해보는 이 하나 없이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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