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는 정말 좋았을까 ? (영화 후기)
대략 십 몇 년 전 모 예능에서 이 영화의 원작을 읽고 (?)
모 연예인 분이 독후감을 낭독했던 것이 영화 홍보 비슷
하게 회자되던데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은 성취한 것이 많
았지만 아마도 행복하지는 않았을 듯 하다.
"세상이 자네를 충분히 고통스럽게 벌하고 나면, 언젠가
이 세상은 자네를 불러 성대한 연회를 개최할 걸세. 근사
한 곳에서 자네를 위한 연설도 해주고, 상도 수여하겠지.
사람들은 자네 등을 토닥이며 이제 자네는 용서받았다고
할걸세. 그러나 기억하게. 그 모든 것은 오펜하이머 자네
를 위한게 아닐세. 그들이 자신들 스스로에게 베푸는 것
이지."
라는 영화 속 아인슈타인의 대사에서처럼 오펜하이머의
삶은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했고 때로는 근사하기도 했었
을 것이다.
Prometheus stole fire from the gods and gave it to
man. For this he was chained to a rock and tortured
for eternity.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
게 주었다. 이로 인해 그는 쇠사슬로 돌에 묶여 영원히
고문받았다)
핵폭발 장면과 함께 위 문구가 뜨며 영화가 시작된다.
오프닝이 지나면 1 핵분열 (Fission) 과 2 핵융합
(Fusion) 으로 컬러와 흑백을 구분한다. 챕터가 아닌 컬러
와 흑백 전환으로 구분하는 연출. 놀란 감독이 토탈 필름
신년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흑백
장면들은 실제 역사를, 컬러 장면들은 오펜하이머의 관점
을 따르는 장면들이라고 한다.
영화 초반, 물리학에 대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
으나 영국으로 건너온 이후 우울증에 시달리던 오펜하이머
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대변하는 예술 작품으로 토머스 엘
리엇의 시 황무지,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봄의 제전,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여인
이 등장한다. 셋 모두 오펜하이머를 둘러싼 사회가 20세기
라는 당시 기준 현대에 들어섰음을 의미하는 혁신적인 작
품이며, 청년 오펜하이머의 감정, 그의 혁신성, 나아가 그
가 주도하게 될 맨해튼 프로젝트와 그 이후의 미래를 암
시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는 나무위키의 설명에 동의한다.
영화의 핵심 인물은 크게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킬
리언 머피), 스트로스 (로다주), 캐서린 키티 오펜하이머
(에밀리 블런트), 진 태트록 (플로렌스 퓨) 인 듯 하다. 여
기서 여성 인물들을 먼저 부연 설명하면 진 태트록은 원래
사귀던 여친인데, 만약 이 분과 결혼했다면 좀더 사상 검증
이 극심했을 듯 하고 어쩌면 아예 다른 사람이 맨해튼 프로
젝트를 진행하지 않았을까 싶다.
캐서린 키티는 좋은 아내 역할을 해주었지만 좋은 어머니
역할을 할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
이머와 캐서린 키티 모두 좋은 부모가 될만한 사람들은 아
니었다. 영화에서 그렇게 묘사되고 있고 실제 역사에서 그
들의 자녀들이 행복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
로다주가 열연한 루이스 스트로스는 어딘가 영화 아마데
우스의 살리에리를 떠올리게 한다. 악의 없는 천재 아마
데우스를 질투하고 악감정을 가졌던 살리에리 비슷하게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
고 (사실 계기는 오펜하이머가 만들긴 했음) 그를 공격하
는 청문회를 기획하게 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글만 길어지고 있는데 관심 있는 분들은 너튜브에서 이
동진의 파이아키아 오펜하이머 리뷰 영상을 보는 것을 추
천한다. 이 영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계신 듯하다. 아무튼
정리하면 이 영화는 그냥 '인간' 오펜하이머, 그리고 그
주변에서 분열하고 융합하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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