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하는人 [438969] · MS 2012 · 쪽지

2013-01-09 12:20:01
조회수 3,470

'생활과 윤리'를 비판적으로 보시는 분이 많으신데요..

게시글 주소: https://faitcalc.orbi.kr/0003493807

일단 전 윤리교사를 꿈꾸는 학생이고요. 2013 입시에서 논술 전형(일반선발)으로 서울 소재 H대에 합격한 학생입니다. 윤리를 매우 좋아해서 고3 현역 때도, 재도전 때도 1등급 중에서도 주로 만점을 받았고요. (이런 말을 스스로 하려니 민망하네요.. ㅋㅋ)

몇몇 분들께서 생활과 윤리를 도덕과 시민윤리와 전통윤리의 잡탕 과목이라며 변별할 거리도 없고, 난이도도 너무 쉬워 상위권들은 선택할 가치가 없는 과목인 것처럼 표현을 해 놓으셔서 그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일단 생활과 윤리가 접근이 용이한 과목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생활과 윤리라는 교과 자체가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와 현상들에 대해 윤리학적으로 고민해보는 것이기에, 친근하고 익숙한 주제들(예컨대, 동성애나 낙태, 안락사, 예술과 외설, 다문화 사회, 사회부패 문제 등)이 문제의 내용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접근 용이가 곧바로 점수 용이로 치환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회문화 역시 접근이 용이한(개념이 쉬운) 대표적인 과목인데요. 그렇다고 하여 점수가 쉽게 나오거나 만점자가 속출하는 과목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그 쉬운 내용에서도 어떤 방식과 유형으로 문제를 출제하느냐에 따라 변별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생활과 윤리가 그렇게 쉽기만 한 과목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작년 5월에 시행된 2014 예비수능의 일부분입니다.
5. 갑: 도(道)는 가까운 데에 있는데 그것을 먼 데서 찾으려고 한다. 사람마다 먼저 자기 어버이를 어버이로 섬기고, 연장자를 연장자로 받들면 천하가 화평해질 것이다.
을: 성스러움[聖]을 없애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들의 이로움은 백 배가 되고, 인의(仁義)를 버리고 자연(自然)에 따르면 백성들은 효성과 자애를 회복할 것이다.
6
. 갑: 요즘 사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이나 폭력 문제는 학생 개개인의 이성과 선한 의지를 통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합리성과 선한 의지를 함양하는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을: 그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와 같은 견해를 지닌 어떤 서양 사상가는 “집단은 개인에 비해 타인의 욕구를 수용하는 능력과 합리성이 훨씬 부족하므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책이나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저는 당신의 주장에 대해 ㉠고 생각합니다.
10. 정의는 구성원들이 공정한 절차를 통해 합의할 때 확보된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선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 등을 모르는 무지의 베일 상태에 있다면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주는 분배 방식에 합의할 것이다. 그 이유는 ㉠. 이것을 제비뽑기에 비유한다면 아래 그림의 A, B, C 분배 방식 중에서는 ㉡를 선호하여 거기에서 하나의 제비를 뽑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도덕적 근거가 된다.
16. 좋은 음악이 되기 위해서는 노랫말이 훌륭한 덕을 지닌 사람의 용기와 절제를 모방해야 하고 나아가 선율과 리듬의 형식이 그러한 내용을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

위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생활과 윤리에도 변별을 할 수 있는 내용 요소가 있습니다.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 불교를 기본으로 하는 전통 사상과 칸트 윤리학, 공리주의 윤리학, 덕 윤리학 등의 윤리학설, 사회 정의와 관련해 롤즈 등의 다양한 사회 사상들, 그리고 일상 생활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윤리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은 출제자에 의지에 따라 다분이 난이도 있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활과 윤리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는 바로 논술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논술전형으로 합격했습니다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평생 논술학원은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논술과 관련해 어떤 강의도 듣지 않았습니다. (인강 등을 다 포함해서요.) 그리고 논술은 따로 준비해본 적이 없습니다. 일주일도 준비를 못했고, 실제 논술시험 때 처음으로 논술을 완성해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 입시에서는 인하대와 국민대 논술을, 2013 입시에서는 한양대와 경희대 논술을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생각하건대, 어릴 때부터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는 점과, 윤리에 대한 열정으로 윤리를 깊이 파고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과 윤리와 윤리와 사상은 기본적으로 논술에 가장 도움이 되는 과목 중의 하나입니다. (제 생각엔 생윤하고 윤사, 사문, 국어의 비문학이 논술과 가장 연관성이 있는 교과목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생활과 윤리와 윤리와 사상을 같이 선택하면 시너지 효과가 매우 큽니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이 유가와 도가, 불교 사상, 칸트와 공리주의, 덕 윤리, 그리고 롤즈 등이 겹칩니다. 윤리와 사상이 어떤 윤리학적 개념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한다면, 생활과 윤리는 이를 생활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예컨대, 칸트는 자신을 포함해 모든 이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라 했고, 따라서 생명의 존엄을 이유로 안락사에 대해 반대할 것입니다. 앞에 부분이 윤리와 사상이라면, 뒤에 부분은 생활과 윤리일 것입니다. 이렇게 상호 연결되어 같이 공부한다면 겹치는 부분이 많아 공부하기가 매우 용이할 것입니다.

따라서 생활과 윤리가 마치 포퓰리즘에 입각한 쉬운 난이도로 학생들을 꼬여내어 미친 백분위를 양산할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은 입시를 치뤄내야 할 학생들에게 커다란 실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생활과 윤리, 믿고 선택하셔도 괜찮을 것입니다. 흥미와 진로를 고려하셔서 결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한한가자 · 335754 · 13/01/09 13:52 · MS 2010

    근데 역설적이게도 근거로 제시하신 바로 그 부분이 상위권 학생이 생활과 윤리를 선택해선 안되는 이유입니다.

    예비수능 문제들을 보면 변별할 부분이라고는 현재 윤리와 사상과 겹치는 부분이 거의 전부인데요.

    이게 예비수능,6월,9월 같은 경우는 출제하는 분들이 그냥 내지만 수능으로 들어가면 과목의 정체성 생각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저 내용들이 윤리와 사상에서도 다루는 내용이므로 최대한 중복 출제를 피하고 또 생활과 윤리라는 과목명에 맞는 문제들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될 경우 실제 수능에서는 모의고사와는 영 딴판으로 쉬운 문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거죠.

    이게 이럴 수밖에 없는게 경제지리의 예를 들면 좋습니다..

    경제지리도 한국지리,세계지리와의 차별성이 많이 모호한 과목이었고 항상 중복 출제를 피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때문에 문제 출제 범위가 상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수학 계산 문제식으로 시험이 변질됐고 이 때문에 새 수능에서는 퇴출되었죠.

    생활과 윤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과목의 정체성이 상당히 모호한 상황에서 실제 수능 시험장에서 출제진들은 윤리와 사상과의 차별점을 매우 많이 의식할 것이고 14 예비수능에서 상당히 쉬워보였던 실생활 관련 윤리 문제들이 주류를 이룰 경우 상상을 초월하게 쉬운 문제도 출제될 가능성이 있다는거죠.

  • 애지하는人 · 438969 · 13/01/09 13:59 · MS 2012

    윤리와 사상과의 중복 출제 부분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같은 내용을 가지고도 어떤 관점과 형식으로 문제를 출제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예컨대, 제가 글에서 써 놓았듯이 낙태 문제를 의무론과 목적론의 관점에서 비교한다든지, 자연관과 환경에 대한 문제를 유가와 도가와 불교의 관점에서 비교한다든지, 복지 문제를 롤즈와 자유지상주의 관점에서 비교한다면 이는 생활과 윤리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일상 생활의 다양한 문제들을 윤리학적으로 고민해보는 것) 변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이클 샌델의 '왜 도덕인가'를 읽어보시면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한한가자 · 335754 · 13/01/09 14:07 · MS 2010

    네 뭐 제가 보기에도 그런 관점에서 문제들을 쭉 출제하는거 같던데

    그것도 출제를 하다보면 어느정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죠. 그런 식으로 다루는 것도 기존 윤리 시험에서 안했던것도 아닌거라서 실제 윤리와 사상과 변별점이 뭔가?라는 생각이 출제 교수들 사이에서 안들 수가 없겠죠.

    그리고 그런 문제들이 실제 시험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보여지지만 그게 윤리와 사상처럼 어렵게 나올 수는 없다는거죠. 그렇게 될경우 동일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과목이 두개가 되는 셈이 되버리죠. 적용하는 주제만 다른거지

  • 애지하는人 · 438969 · 13/01/09 14:11 · MS 2012

    네 저도 님께서 여러모로 지적하신 점들을 평가원과 생활과 윤리 출제진들이 앞으로도 계속 개선해 나가야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윤리와 사상의 서브 혹은 아류가 아닌 생활과 윤리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이 땅의 수험생들에게 실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윤리학적으로 고민해보는 장을 마련해주길 바랍니다..

  • crispyparadise · 332761 · 13/01/09 15:54

    국사도 09부터 근현대사 문제 냈는데 윤리라고 안될 거 있나요
    그리고 예비평가랑 본 수능을 다르게 낼거면 뭐하러 예비평가를 보겠습니까 ㅡㅡ

    그리고 경제지리 해보시긴 했나요?
    실제 입지론 관련 문제는 3~4문제 정도만 출제됩니다
    수학 계산 문제로 변질 됬다고 하는데 입지론 자체가 일차함수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계산 문제가 나오는 거구요

    내용이 한지 세지와 겹친다고 하셨는데 물론 겹치긴 하죠
    그러나 그 내용을 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따라서 출제범위도 엄연히 다르구요

  • 한한가자 · 335754 · 13/01/09 17:42 · MS 2010

    경제지리 여러 해 했구요. 올해 47점 백분위 99였습니다.

    경제지리가 올해만 수능 막판의 해라 잡다한 내용을 여러개 냈던거고(ebs 반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동안은 항상 과목의 정체성에 큰 고민을 가졌었고 때문에 막상 수능으로 가면 대부분의 파트가 무시되는 경향이 있었죠.

  • 한한가자 · 335754 · 13/01/09 18:39 · MS 2010

    그리고 위에 제가 써놓은거 좀 자세히 읽고 답하시길 바랄게요.

    생활과 윤리에서 윤리와 사상과 겹치는 문제가 출제되지 않을 것이라는게 아니라 겹치는 부분에서 문제가 나오면 과목의 정체성의 문제 때문에 어렵게 나오기는 쉽지 않다는거죠.

    국사 안에 있는 근사도 시험의 당락을 가르는 킬러로 나오는건 아닌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그거랑 이거랑 다르구요.

  • crispyparadise · 332761 · 13/01/12 00:34

    경제지리 6 9 수능 놓고 비교해보세요
    분명 전체적 맥락은 비슷합니다
    사설 교육청 때문에 혼동하신 거겠죠

    국사 속 근사도 점점 어려워지고 비중도 늘어났습니다
    근사 선택 안한 사람에겐 충분히 킬러라고 할 정도로요

    보아하니 아직 대학 못 가신 장수생이신 거 같은데
    이상한 주장하지 마시고 공부나 열심히 하세요

  • 한한가자 · 335754 · 13/01/12 01:01 · MS 2010

    수능만의 흐름 모르면 걍 가만히 있어요

    올해 경제지리에서 이비에스가 얼마나 강력하게 나왔는지도 모르죠?

    모르면 가만히 계시고 올해 대학갑니다 한의대 갈 예정이구요

    수능만 쭉 안살펴놓고 대놓고 인신공격부터하네ㅋㅋ

  • 한한가자 · 335754 · 13/01/12 01:09 · MS 2010

    그리고 지금 생활과 윤리는 신규과목이고 윤리와 사상과 아예 별개의 과목입니다 국사 속 근사는 몇년 됐구요 양상 자체가 다르죠

    그리고 국사 근사 정치 선택해놓고 경제지리는 어떻게 그리 잘알죠?

    설마 올해 수능 친것도 아니면서 경제지리가 "분명" 전체적 맥락이 비슷하다고 넘겨 짚은건 아니겠죠?

    저보다 나이도 많은 장수생이면서 그렇게 말하시면 섭섭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