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전과 후 서울대 합격 수기 6. '아프고 특이한' 내가 공부를 통해 얻은 의미는 무엇인가
읽기 전에 말씀드립니다.
사실 이 수기를 쓰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한 주의 끝까지 밀어놓았었습니다.
스스로를 마주보는 게 너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솔직하게 썼습니다.
불편할 수도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지금까지의 수기를 읽어주셨던 분이라면 이 수기도 마음 내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음이 힘드신 분들은 이 편은 그냥 넘기셔도 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22살의 봄 저는 기대에 부풀어있었습니다. 원하는 학교/학과에 합격했다는 게 행복했고, 학교 생활도, 과외를 통한 경제 활동도 이제 온전히 누릴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년이면 스물 여섯이 되는 저는 올해 1년 반째 휴학중입니다. 지금 그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뭉근합니다. 3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그때의 저는 예측할 수 없었고, 이리 저리 흘러갔던 일들을 내다볼 수 없었지요. 그게 안타깝고 풋풋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재재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저는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고, 열심히 가르친 과외 학생들과의 인연도 있었고, 찾아온 합병증과 잡히지 않는 컨디션으로 인한 절망도 있었고, 인간 관계와 스쳐간 사람들에 대한 기쁨과 슬픔도 있었습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새롭게 다니게 된 이 학교, 그리고 학과와도 관련이 있지만, 어떤 것들은 전혀 관련이 없었습니다. 사실은 대부분 그랬네요.
수기 2-2편을 쓰며 제가 수능에서 얻은 수확을 '작은 승리'라고 표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겐 충분히 의미 있는 성취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저는 '작은' 이란 단어를 붙였던 것이 적확한 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물 둘의 저는 아마 훨씬 대단한 수식어를 붙였을 것 같지만요.
결론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수능'이 준 기회는 많았으나, '수능' 자체가 해결해 준 것은 많이 없었다고. 수능으로 얻게 된 이 학벌이 나에게 준 경제적인 기회도 있었고, 전혀 똑똑한 사람이 아님에도 내 의견을 누군가가 조금 더 귀담아 들어준다는 것도 분명 사실이었으나 결국 그 후의 일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은 수능을 준비하며 내가 깨닫게 된 '노력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과외 학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나에게 주어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결국 저는 옛날의 독기를 되살려야 할 때가 많았거든요.
아마 제가 아파서 더 그럴 거라 생각도 합니다. 제 마음이 많이 작아질 때는 이 사실이 분하고 슬플 때도 있습니다. 사실 많습니다. 몸이 아프고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했던 3년 전의 제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3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마 수능을 준비했던 시간에 준하는 노력을 했다 하더라도 육체적/정신적/경제적 궁핍이 다 해결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때의 막연한 승리감이 아마 제게 더 기대를 줬겠지요.
그래서 지금 저에게 그 때의 공부가 준 의미를 묻는다면 저는 '승리' 자체보다는 과정에 주목하겠습니다. 그래도 지금 저는 확신할 수 있거든요. 그 만큼 마음을 쏟으면 어떤 부문에서든 나는 나아질 수 있을거라고. 제가 가르친 학생들에게도 그런 신뢰를 주고 싶었습니다. 마음을 쓰며, 스스로를 엄하게 대하며 공부한 경험은 결국 네 스스로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여겨도 된다는 확신을 주는 경험이 된다고.
수능을 잘 본 친구도, 못 본 친구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친구는 왜 과정에 주목하는 거지, 결국 저 사람도 성적 잘 받아서 저런 얘기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결과로 인해 더 빠르게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맞습니다. 다만 결과 떄문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네요.
제가 세 번째 수능을 준비할 때 어머니가 한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수능 당일 날 했던 말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일을 하시기 때문에 수능이 다 끝나고, 국영수 점수까지 채점이 완료된 시각인 오후 7시에야 얼굴을 뵐 수 있었습니다. 현역/재수 때는 많이 긴장하셔서 얼굴을 뵙기 전 전화를 주셨던 어머니가 세 번째 수능 날에는 전화도 하지 않으셨고, 별로 긴장하지 않은 얼굴로 저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게 의아했습니다.
왜인지 물으니 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열심히 했잖아, 그렇게 열심히 할 줄 알면 수능 못 봐도 어떻게든 원하는 걸 할 수 있어. 그걸 알면 된거야.' 이제 그 말을 알겠습니다. 고시에 붙었던 친한 형을 보며, 원했던 일의 성취에 실패하고 다시 도전해 더 성공한 친구를 보고, 작고 크게 실패하고도 한결같은 자세로 임하는 제 학생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노력으로 스스로를 치열하게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분야든 언젠가는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잡고 있는 사람이라고. 어느 땐가 언젠가 그 가능성이 꽃을 피울 때가 있다고. 수능이 아닐 수는 있겠지만 인생에선 맞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길을 크게 잃은 사람은, 결과의 불투명함 앞에 좌절하고 스스로가 어리석다고 느끼는 여러분만큼 스스로가 미운 사람은 저일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요즘 침대에서 잘 못 일어납니다. 아침에 깨고 싶은 데 항상 일어나면 오후 두 시여서 절망합니다. 어느 순간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나는 조금만 흐트러져도 너무 쉽게 아프다는 게, 공과금이 밀릴 때 독촉 전화를 애써 무시해야 한다는 게 다 지겨워졌습니다. 알고는 있습니다. 아직 마음이 자고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깨는 지 모르겠지만요. 너무 오랜 시간 치열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무의 잘못도 아닌 확률의 불운에 맞서 쌓아올려야 할 노력의 양이 아직도 몇 년 어치라는 것이 지겨울 뿐입니다.
저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조금 더 칭찬해주려고 합니다. 좋은 부분을 찾아주고, 2시에 일어날 거 1시 반에 일어난 게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옛날에 누나가 말해줬듯이. 공과금을 해결하기 위해 과외를 더 잡을까 생각하고, 라면 말고 뭐라도 제대로 차려먹으려는 게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혈당을 재고 인슐린을 더 빨리 맞는 게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게 맞겠지만, 너무 많이 맞아서 작은 돌부리에도 픽 쓰러질만큼 다리에 힘이 풀린 기분이 듭니다.
내년이면 복학을 합니다. 본과 공부를 해야겠지요. 솔직히 무섭습니다. 과거의 저를 믿지만, 현재 제 마음의 가난이 무섭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일어서고 있습니다.
얼굴 모르는 여러분이지만 저를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한 마음을 조금씩은 써주신다면 좋겠습니다. 평가원에 말해 수능 시행령을 바꿔 1형 당뇨 친구들도 혈당기를 시험장에 반입할 수 있게 할만큼 행동력이 좋았던 제가, 스스로에 지치고 사람에 지쳐 끝내 모두를 미워하지 않고 악만 남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답을 찾지 못해도 어쩌면 요행이라도 조금은 괜찮은 하루로 밤을 넘길 수 있도록 마음 써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견디고 있습니다. 열심히 버티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해준 제 믿음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이 지난한 제 환경을 지탱해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환경을 돌파하는 사람도 있을거라 믿어주세요. 괜찮을거라고 말해준다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저도 제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할 겁니다.
모두들 평안한 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커뮤니티 특 0
분탕치러 들어온 유입이랑 준고닉이 영혼의 키배를 뜨고 있는데 50%는 관심없음
-
음료수 마실 때 1
빨대로 보글보글하면 너무 애샛기임?
-
나 솔크 아니긔 1
릴스가점지해줫긔
-
ㅈㄱㄴ
-
클스마스에 부산가는데 눈오면 좋겟다
-
크앙 공룡이다 2
크아앙
-
인증이 너무 오래걸리는걸보니 여초커뮤에서 스샷지원받는중인가보네요 느그들본진으로 돌아가주세요^^
-
안녕하십니까. 올해 10월 12일 시행된 2025학년도 자연계열 논술시험과 관련하여...
-
뭔가 남자가 괜히 분탕치는 느낌인데 여자인척 하는거 같음
-
24일까지 밤샜다가 25일 새벽될 때 즈음에 수면제 먹고 퍼 잔다음 26일 자정에 일어날 것임
-
충북대 - 주차장에 컨테이너박스 놓고 수업 단국대 - 간호대 건물에서 수업...
-
고2때 써도 고3때도 가능함요?? 일부러 아껴두고 있었는데
-
둘다 노프사라 누가 누군지 헷갈리니까 저희같은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둘중에 한분은...
-
레디컬 성향은 많지 않아도 어차피 페미 자체가 여자한테 이득이면 이득이지 피해주는...
-
배재대 수준 0
동아대 조선대가 지거사(거점 사립대)라는데 왜 배재대는 아니니?
-
그냥 80kg 넘는 여학생분 찾으면 끝나는건데
-
눈 적당히 오랬더니 걍 눈을 투하하고 있네 하..
-
아 폭설인데 6
이정도면 가다가 눈사람되겠네
-
평평이들 1
음모론을 광신적으로 믿는 이유를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가 되버렸기 때문이라 그렇다고...
-
인생 개좆같네 진짜 시발ㅋㅋ
-
학교 학과까고 6
키배뜨면 안쫄리나 동기나 선배가 알아보면 어떡함
-
01년생 ㄷㄷㄷ 존잘+ 의대생 +기피급 생1 저자
-
그래서 원래 걔가 올라오기로 했는데 걍 내가 가기로 함 성심당 가는김에 친구도 보고 일석이조
-
*재탕입니다. 어제 문항 공급 계약 미팅을 나갔는데 피오르는 요즘 영업을 안 하지...
-
입시판에서는 막 서강대가 성균관대보다 몇점이 높니 외대가 낫냐 중앙대가 낫냐 ㅈㄴ...
-
평소 역사랑 지리에 관심 있어서 세지랑 친구 추천으로 사문하려고 했는데 이번에 세지...
-
눈 무게 때문에 나무가 부러짐
-
난..루 1
저 외톨이..
-
근데 손주은 3
이번에 고등학생 대상으로 한 입시 설명회에서 저런 말 한 게 레전드임 ㅋㅋㅋ 여학생들도 많았다는데
-
애인 실험끝나면 데리러 갈 준비나 해야지
-
어떻게 인생최고업적이 애니 안 본거 ㅋㅋ 쟤같은 지능으로 태어났으면 진지하게 자살고려해볼듯
-
내년 의정부고 졸업사진에 이거 나올까 궁금하네
-
확 씨 아주
-
주입식 교육 3
너무 야한 것 같음 헤으응
-
* 자세한 문의는 아래의 링크를 통해 연락 바랍니다....
-
면접에서 준비 못한 물벼룩 실험 질문 들어왔는데 순간 에피네프린이 작용하면 심장이...
-
나 이러다 집 못돌아가겠는데
-
데코니나 앨범발매 10
기념 마네킹 꺼내 듣기 캬캬캬
-
냉장고 7
-
(펑) 한시간동안 눈맞으면서 애니 얘기 하다가 가야함
-
저도 항상 써보고싶었어요
-
2021수능은 국어를 무슨과목을 쳤나요 22학년도부터는 독서문학은 공통 선택은 화작 언매라면
-
난 너희 지지해 사랑해 소멸할지언정 개방은안돼안돼
-
함께 있는 이 순간에 내 모든 걸 당신께 주고싶어 이런 가슴에 그댈 안아요
-
궁금 난 공학이 더 좋아...
-
ㅇㅇ
-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무언가 좋다고 하는 자료를 풀어도 인바디처럼 실력을 측정하는...
-
저게 문제의 온상이야 애들끼리 대면한번안시키고 상상력만 추가시키니까 애들이...
멍멍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글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
이렇게 좋은 글을 이제야 봤네요. 참 공감도 되고 위로도 받고갑니다. 스스로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사유하셨으니 더 성장하실거라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