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에 다녀오다
초등학교를 가서 아이를 울렸다.
그것도 너무 처참하게 울렸다.
요즘 학교에는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린다.
폭력이 발생하면 당사자들에게 맡길 게 아니라 학교가 나서서 계도하고 중재하자는 취지다.
어떤 학생이 다른 학생을 괴롭히고 폭행하면
'학폭위'가 열리고 '판정'을 한다.
심판대에 선 가해자는 반성하고 읍소하며 선처를 구하고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가 아직도 깊다며 전학시켜줄 것을 요구한다.
이런 조치는 필요하다. 청소년들에게 일회적 사법처리는 괜한 반발심만 불러일으킬 수 있고
요즘 청소년범죄는 때떄로 성인범죄의 잔혹함을 뛰어넘으니.
그런데, 이런 학폭위가 초등학교에서도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난 바로 그 초등학교의 '학폭위' 위원으로서, 법조인으로서 사건을 심리하고 판정에 관여하러 초등학교에 갔다.
죄명은 단촐했다. 폭행.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코끼리코를 돌며 다른 동급 여학생의 복부 그리고 가슴을 가격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가격했을 때 피해여학생은 하지 말라 했으나 가해여학생은 듣지 않았다.
한바퀴 돌았고 두바퀴를 또 돌았다. 그렇게 총 3대를 때렸다.
먼저 피해자가 나왔다. 사실 초등학교에서 학폭위가 열리는 것은 대부분 당사자의 의사 때문이 아니다.
바로 '학부모'의 의사 때문이다. 우리 애가 이렇게 맞고 왔는데 학교 측에선 코끼리코 3대 사안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다. 피해여학생은 1대를 맞았을 때 멈추라 했지만 2대, 3대째를 맞고 울음을 터뜨렸다.
피해학생의 아버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했다. 1달 전에도, 2달 전에도 이런 사실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교사는 가해학생을 혼내고 피해학생에게 사과시켰는데 피해학생의 학부모는 내 아이가 이렇게
맞고 온 것도 놀랐는데 두 손으로 '토마토' 뺨까지 맞았다는 사실을 듣고 화가 치밀어오른다 했다.
두 팔을 활짝 벌려 두 손바닥으로 아이의 볼을 툭툭치는 놀이를 '토마토'라고 한단다. 피해학생 역시
제대로 의사표현은 못했지만 "가해학생을 용서할 수 있냐"는 물음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폭행은 그 강도나 종류에 관계없이 사람의 심연에 깊은 상처를 새긴다. 누군가는 머리를 맞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반면 누군가는 귓볼 잡히는 것만으로 모멸감을 느낀다.
이윽고 가해학생이 들어왔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이 학생은 그의 어머니 옆에서 책상을 두들기고
장난을 쳤다. 어머니는 자식을 둔 부모 입장에서 깊게 반성하고 따로 사과전화도 드렸다고 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사과하고 끝났는데 왜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자기는 조금 이해가 어렵다고도 했다.
"어머니, 저는 외부위원이지만 피해자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사과했어도 마음은 많이 다쳤을 수 있어요. 애야 1학년이니 아무것도 모를 수 있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어머니는 수긍했고, 이윽고 아이에게 질문시간이 돌아왔다.
"은혜(가명)야. 너 수연이 뺨을 때렸니?"
아이는 답하지 못했다.
"은혜는 여기 반성문에 장난이었다 했는데... 코키리코로 수연이 때린 것은 맞아?"
아이는 머뭇거리며 엄마 눈치를 봤다.
엄마를 쳐다보던 눈망울에 물이 고이더니 이내 펑펑울었다.
큰소리로 서럽게, 아주 서럽게 울었다. 가해학생의 어머니는 그런 아이에게 울지 말라며 타박했다.
대부분의 형사절차에서,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피해자에게 상처가 될줄 "몰랐다" 한다.
그러면서 "상처가 됐다면" 미안하다 한다. 그러고 "선처해" 달라 한다.
선처받으면, 또 되돌아간다. 90%는 상황모면용이다. 진심으로 반성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애초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김이 아닌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할
100가지 근거를 댄다. 나도 때리기 싫었다. 오죽하면 그랬겠느냐. 그래도 폭력은 잘못이다.
딱 이 정도 스탠스다.
더이상 문답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절차는 끝났다.
위원장인 교감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변호사님, 이게 학교 폭력에 해당하긴 하나요? 1학년 애들인데..."
"네, 안타깝지만 해당은 합니다."
법적으로도 폭행에 해당한다.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고 피해자의 의사에 반했다.
구성요건은 족했으며 피해자는 폭력이라 느꼈다. 여지없이 폭행.
결국 학교폭력으로 의결하여 판정에 들어갔고 모든 절차가 끝이 났다.
학교문을 닫고 나오는데 은혜의 모습이 목에 걸렸다.
만6세. 초등학교 1학년. 난 이 아이를 두고 형법 각론과 구성요건을 이야기했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자 생긴 학폭위. 어른과 학교 모두 책임지기 싫어
생긴 '빈' 공백에 아이들이 심판대에 서야 했다.
학폭위에서 내가 본 폭력은 은혜의 폭력이 아니라, 그들을 심판대에 세우고 질문을 쏟아낸 나 자신,
그리고 어른들의 폭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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