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계(reverse engineering)란 무엇인가
이번 편은 일단 공학의 한 개념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태 수능 국어에 대한 책 쓴다고 인지과학, 심리학, 전쟁사, 역사, 직업 등의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문과적인 이야기나 컨셉을 자주 사용했었습니다.
아마 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제가 수학도 건드리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개념은 분명 공학적 개념이지만, 수능 수학에 써먹을 수 있는 생각입니다. 특히 '기하와 벡터'에
역설계(reverse engineering)는 단어 그 자체로 설명이 끝납니다. 한글로 풀어쓰면 '거꾸로 생각해서 되돌아가기'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 공학에서 설계는 시작점이 존재합니다. 여러분이 매일 쓰는 샤프가 너무 잘 고장나고 불편해요. 그럼 개선을 하고 싶겠죠. 그래서 개선을 합니다. 재질이나 모양, 디자인을 좀 인체공학적으로 바꾸거나 보완해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욕구와 목표설정을 시작해서 결국 제품으로 이어지는 당연한 과정입니다.
인간 세계에서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정도(正道)가 있으면 패도(覇道)가 있는 법. 이런 일반적인 공학 과정과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로 역설계입니다. 어떤 만들어진 제품을 보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아, 설계자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겠구나. 대충 어떤 기술을 써서 개발한거구나 등등.
(일반적인 공학이 순차적으로 밟는 과정을 역설계는 거꾸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 역설계는 악명이 자자합니다. 보통 안좋은 일에 많이 쓰이거든요. 기술탈취, 산업스파이, 특허침해 등에 자주 활용되는 사고방식입니다. 어떤 회사에서 신제품을 만들면, 그걸 가져가다가 거꾸로 뜯어보고 모방해서 비슷한 제품을 자기 이름대고 개발했다고 우기는 겁니다.
비슷한 일이 군수산업에서도 벌어집니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 개발한 무기를 함부로 아무대나 팔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얼마전 한국에 최초로 도입된 스텔스기의 경우에도, 미국은 자국의 우방국에만 제공해줍니다. 함부로 상대방에게 팔았다간 신나게 분해당하고 분석당해서 기술탈취가 벌어지거든요.
(https://www.mk.co.kr/news/politics/view/2019/03/192122/)
그래서 보통 무기를 수출할때는 핵심기술이나 핵심부품은 빼고 다운그레이드해서 파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물건이 상대방 손에 들어간 순간 충분히 역설계를 통해서 모방하기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가 비싼 돈 들여서 뛰어난 기술 개발했는데 상대방은 그거를 거의 공짜로 모방해버리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뒤집어지겠죠?
보통 전쟁 중 상대방의 무기나 전투기, 병기를 노획하면 신나게 뜯고 분해합니다. 상대방의 물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술적 장점을 흡수하려는 것입니다. 일본이 미국에서 구입해온 스텔스기를 태평양에 잃어버렸을때 미친듯이 찾은 이유가 이것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가져가버리면 미국의 기술을 고스란히 갖다 받치는거랑 똑같습니다.
(현대에서 뛰어난 무기들은 엄청나게 비싼 기술로 만들어집니다. 상대방에게 병기가 탈취당할 것을 우려해서 자폭한다던지 소각하는 것도 기술유출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학생들은 수능 기출문제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저는 이미 여러편의 칼럼을 통해서 기출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출제진들의 핵심 기술이 담긴 무기를 들고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분석해서 출제자들이 가진 기술을 유출(?)하는 것이지요.
수능 기출문제들을 통해 선생님들은 유추, 역설계를 합니다. 아 여기서는 뭘 물어보았구나. 그럼 이걸 원했던 거구나. 그렇다면 결국 출제진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문제를 낸거구나.
이렇게 얻은 핵심 기술(출제진의 생각, 관점)을 가지고 사설모의고사나 선생님들이 문제를 만듭니다. 최대한 수능 문제와 비슷한 좋은 문제를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지금 제가 수능 국어에 대한 책을 쓴다는 것도 똑같습니다. 기출문제들을 살피고, 지문을 관찰해서, 출제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문제를 냈을지 역으로 상상하면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함수를 봤습니다. x에 5가 들어가면 10이 나오고, 6이 들어가면 12가 나오고, 8을 넣으면 16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런 결과를 통해서 역설계를 하면 최초의 함수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y = 2x 라는 함수를요. 이 함수에 똑같이 다시 x에 5넣고 6넣고 8넣으니 함숫값이 10, 12, 16이 나옵니다. 최초의 함수를 잘 유추한 것입니다.
이렇게 역설계 아이디어는 수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럼 수능 수학에서, 어떤 파트에 제일 잘 활용할 수 있을까요? 저는 기하와 벡터 파트라고 생각합니다.
기하와 벡터 문제를 보면 뭐라고 합니까? 어떤 길이를 구하라, 넓이를 구하라 등을 요구합니다. 이걸 보고 여러분은 뭘 생각해야 합니까? 그 정답을 얻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역으로 유추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벡 문제에서 c의 길이를 구하라고 물었습니다. 그럼 뭘 구해야 c를 구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a랑 b를 구해야합니다. 그리고 나서 더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시 a와 b를 각각 구할려면 뭘 찾아야 하는지)
분명 이런 역설계 접근은 다른 수학 분야에도 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낀 바로는 기하와 벡터가 이런 사고방식을 활용하기에 최적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아마 기회가 된다면 이 칼럼을 시작으로, '역설계로 접근하는 기하와 벡터'라는 시리즈 물로 연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공통 8 10 15 20 22틀림
-
고1 수학 개념이 허접한 상태인데, 이 강의만 들어도 가능할까요? 0
올해 수능 볼 예정입니다. 고졸로 살다가 뒤늦게 대학에 가고자 공부를 시작했는데,...
-
물론 젠지가 이기는게 당연히 씹정밴데 22월즈 모드 한번 나올때된거 아닌가 실시간으로 못봐서 아쉽네
-
재종 또 지각함 3
진지하게 올해 20번정도 늦을듯 담임쌤한테 너무 죄송하네
-
집에서 기차역까지 10분 기차타고 30분 기차역에서 학원까지 지하철 10분+도보...
-
산 밑까지 내려온 어두운 숲에 몰이꾼의 날카로운 소리는 들려오고, 쫓기는 사슴이 눈...
-
유기마렵다
-
선생님들 언매 독서 문학 각각 몇분정도 걸리셨나요??
-
맛있군 1
야미
-
스포내용이 소재/제목 간접적으로 있을수도있읍니다. 각별히주의하십시오! 난이도는...
-
또 출근 ㅠㅠ 1
출근 시져시져 ㅠㅠ
-
이매진 시간컷 0
비문학지문 가 나 지문말고는 거의다 6분 안이던데 이안에 풀수있는거맞나요?? 8분좀...
-
고민..
-
커피한잔의 여유 2
-
아침답게 차 끓여마시기
-
ㅇㅂㄱ 1일차 1
김동욱 센세가 6시에 깨어나래서 알람 맞추고 일어나는중 빨리좀 자라, 제자야!
-
ㅇㅂㄱ 0
ㅎㄷㄹ
-
일어나니 점심때 1
너무 충격적인데요 도심에 그런 구덩이가 있다는 것도 충격이고 예전에 잠시나마 말을...
-
6모 3~4등급 학생한테 지금 필요한 수업이 어떤것일까요 4
실전개념을 한번 쭉 정리해주자니 좀 늦은 느낌이고.. 그렇다고 다 아는건 아닌거...
-
굉장하군 근데 의과대학 캠퍼스가 따로 떨어진곳이 많아서 만날사람있는거 아닌이상...
-
6평미적 30번 파이수렴 정확히 증명하는거 보여줄사람.. 4
샌드위치로 해줄 수학황 구함... 혼자하려니 안되네
-
대기대순환 문제보면 웬만한건 저는 아예 순환세포하는 지구그림을 통째로 그려야지...
-
불편해서 강제 얼버기ㅋㅋ
-
할 수 있다
-
D70 5
-
콰이어트플레이스 보러감
-
더 큰 열매를 맺을 순 있었지만 이미 충분히 잘 사셨었겠구나 물론 뱃지로도 보이지만...
-
얼버기 0456 2
-
95분 풀고 오답 성실히 하면 허수도 실모 풀어도 되는거 아니냐구
-
D-141, 수능 영어의 마지막 골든타임..작정하고 영어 성적 올릴 학생만 신청하세요. (Feat. 내영프 5기 모집) 0
안녕하세요 여러분! 정민티입니다. 이번 6모 영어의 극악한 난이도로 인하여 영어...
-
아직안자는사람 18
얼마나잇나
-
4시군 7
4시군
-
모두를…
-
빌런즈 앱스키마 커리 계속 따라가면서 국어 김승리로 공부하는 재수생 토리인디...
-
이 지문은 나름 개념 간 관계가 명확해서 문제 만드는게 편했어 하이라이트는 말할...
-
24수능 미적3틀 2등급이고 수능 공부 이제 시작하려고 합니다 제가 얼추 생각했을때...
-
나도 내년엔 4
대학생활 즐기고싶어
-
이상하군 6
왜 수면제 복용하면 자꾸 뻘글이 마렵지 이걸로 실수한적 한두번이 아닌데 그냥...
-
자퇴하고 정시 도전해보려고 하는 08이야 자퇴하려는 이유는 1. 메디컬 가고...
-
혹시 영단어 외우다가 모르는 단어 모아놔서 이 단어들로 지문 만들어줘 이런거...
-
잘 안 고쳐짐
-
풀어봤는데 징쨔네
-
진짜 멋있고 재능있고 착한 분이셨는데... 부디 고통없이 가셨기를 죽는줄도 모르게 가셨기를...
-
만들어야...
-
컨트롤 키 하나만 많이 써서 부서졌는데 하나만 구매 못하나요? 구글링해도 저런걸...
-
현강올거같은디
-
6모 해강 ㅋㅋ
역설계는 우리나라가 어떤나라보다 장난 아니라고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장난아닌 나라들이 많다보니 저 비싼걸 터트리고 다시 찾으려는 행동들이 이해가 가네요.
공학입문설계 시간에 배운 기억이 나네요 ㅋㅋ
북한이 SLBM을 만든것도 역공학을 이용했죠
ㅋㅋㅋ공학입문설계
Who are you? ㅇㅅㅇ
한잡대에서 반수해서 뀨뀨대 가셨읍니까? ㄷ
그건 아닌데 저희도 비슷한 과목에서 배운 적이 있어서요 ㅋㅋㅋ
아항...공학설계는 뭐 어느 학교나 다 배우니 ㅋㅋ
그렇게 이것은 2020수능 국어비문학지문에 등장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