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아이드잭 [521447] · MS 2014 (수정됨) · 쪽지

2018-07-01 11: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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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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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혹시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알고 있나요?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저의 중학교 때까지의 장래희망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습니다.


스타크래프트는 윷놀이에 비견되는 민속놀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만큼

대한민국이 PC방 공화국이 된 결정적 계기를 부여한 국민게임이죠.


지금처럼 즐길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했습니다. 


광안리에서 열린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를 보기 위해 10만 명이 운집하기도 했고, 

다음카페 가입자 수가 인기의 척도이던 시절 동방신기 다음으로 많은 가입자 수인 7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던 카페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의 팬카페였을 정도니까요. 


70만 명이나 되는 팬이 있었던 프로게이머가 누구냐고요?


바로 이 사람입니다.

아마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텐데 임요환이라는 프로게이머입니다. 

테란의 황제로도 유명하죠.


그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었겠습니다만, 

저는 그가 누구나 포기할만한 상황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처절하게 버티며 결국 승리를 따내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줬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너무나 유명한 도진광선수와의 패러독스라는 맵에서의 경기입니다.

(경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VqgriBlnJFU




제 기억이 맞다면 이 경기가 16강 조별예선 경기였고, 임요환은 이미 1패를 한 터라 이번 경기를 지면 사실상 탈락이 확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드시 이겨야하는 경기였지만 경기가 시작된 이후로 계속된 전투에서 패배만 하면서 사십여분 동안 상대방에게 얻어 맞기만 했습니다. 해설자들도 모두 도진광의 승리를 확정적으로 말하며 해설을 진행했고, 이를 지켜보던 팬들조차 임요환의 패배를 기정사실화 했었죠. 저 또한 이 경기를 생중계로 보다가 허탈감에 고개를 돌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단 한사람, 임요환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봐도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불필요하다고 보이는 애처로운 방어를 계속하면서 끝까지 경기를 이어나갔습니다. 결과는 여러분이 예상하다시피 계속된 공격으로 자원이 마른 도진광이 결국엔 패배를 선언하며, 임요환이 승리하였습니다.


이 경기는 단숨에 관련 사이트들을 마비시켜버렸고, 포털 사이트들의 검색어순위를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임요환은 승점이 동률인 상대방들과의 재경기 끝에 8강에 진출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So1 스타리그의 준결승 경기입니다. 

임요환의 전성기는 2000년부터 2002년입니다. 그런데, 하는 게임으로서의 스타크래프트가 아닌 보는 프로게임으로서의 스타크래프트가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것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유입된 대다수의 임요환 팬들은 임요환이 누구에게나 이기던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고, 기량이 하락하여 누구에게나 질 수 있는 시절의 임요환을 경험합니다. 계속 무서운 신인들은 치고 올라오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량이 하락하는 임요환은 동네북 신세가 된 것이죠. 이 시절의 임요환은 자원은 캐는데 유닛을 그만큼 생산하지 못한다고 해서 ‘저축테란’이라는 비아냥을 듣곤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얘기할 So1 스타리그 전에는 양대리그였던 온게임넷과 엠비씨게임의 리그 예선에서 모두 탈락하여 단 하나의 리그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양대백수’시절을 겪습니다. 모두들 임요환은 끝났다고 말했으며, 그의 부활을 점치는 이는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05년 So1 스타리그는 시작되었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임요환은 예선을 통과하고 준결승까지 전승으로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런데, 준결승 상대방인 박지호의 페이스 또한 만만치 않게 좋았습니다. 이 때 박지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으며 임요환은 경기 전 상대방인 박지호로부터 ‘한물 간 선수’라는 식의 무시를 받기도 했습니다.


5판 3선승제로 진행되는 준결승 경기.

경기는 일방적으로 박지호의 페이스로 흘러갔고 임요환은 내리 두 판을 내주었습니다. 

 

이 경기 이전까지 5판 3선승제에서 0:2로 지다가 3:2로 역전한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앞선 경기 내용이 너무나도 일방적이었기에,

이 때 이미 다들 임요환의 탈락을 기정사실화하였습니다. 

그리고 3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임요환은 준비해온 전략이 박지호의 꼼꼼한 정찰에 의하여 간파당하여 이후의 경기운영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위기를 겪게 됩니다. 박지호는 임요환의 상황에 맞추어서 여유롭게 경기를 풀어나갔고, 낙승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습니다만 너무나도 상황이 좋았기에 방심을 하였고 자신의 실수로 인해 경기를 내주게 됩니다. 


다음으로 4경기인데, 스타크래프트는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자원을 많이 캐서 이를 바탕으로 병력을 생산하여 상대방을 제압하는 게임인데, 이 때 임요환은 자원을 캐는 곳이 두 군데, 박지호는 세 군데로 꽤나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박지호의 세 번째 자원수급처가 활성화되기 전 타이밍을 노리는 수밖에 없었죠. 임요환은 그 단 하나의 타이밍을 극적으로 잡아서 이 경기를 극적으로 이겨냅니다. 


이 경기를 잡고 2:2가 되자 혹시나 했던 마음으로 지켜보던 팬들이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승전에 진출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커졌습니다. 5경기는 815라는 맵에서의 경기였는데 장장 1시간여 간의 혈투 끝에 임요환선수가 극적으로 승리를 따냈습니다. 임요환의 승리가 확실시되던 때, 현재는 롤이라는 게임으로 더 친숙한 전용준 캐스터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황제가 다시 귀환하고 있습니다.”라는 멘트를 하던 것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인터넷은 다시 한 번 난리가 났습니다. 모든 리그를 탈락했던 한물 간 게이머가 스타크래프트 역사상 최고령으로 결승전에 진출했고, 거기다가 0:2에서 3:2로 역전승을 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보통의 연예인보다 인기가 많았던 임요환이었기에 파급력은 엄청났습니다.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순위가 모두 임요환으로 도배되었죠. 


당시의 현장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시려면 


https://www.youtube.com/watch?v=iOmWaw2jAYk


로 들어가서 40분 30초부터 영상을 보시면 됩니다.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습니다.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고...

뭔가, 감동의 도가니탕을 만들려면 그 백 번 중에 한 번이 나올 때가 그때인 거니까

상대가 엄청 강할 때, 아 이만하면 내가 이겨야 되는데, 아 이 정도면 얘가 포기할 만한데, 포기를 이상하게 안 해. 잘하는 애가. 그러면은 되게 질려요. 막 질려가지고 내가 해야 할 플레이도 잘 못하게 되고. 

아마 도진광이나 지호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아 이 정도 했으면 당연히 이 정도 포기해야 하는데, 의외로 막.. 더 이를 악물고 댐비는 거지. 그러면 자기가 하는 플레이가 주눅들어서 못해요.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런 데서 역전이 천천히 나오는 건데…

-- 임요환, 아프리카 개인 방송 중

결승전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준결승처럼 0:2로 끌려가다가 기적처럼 2:2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습니다. 하지만 5경기에서 아쉽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칩니다. 이것이 임요환의 마지막 결승진출이 됩니다. 그의 마지막 불꽃이 준우승에 그쳤기에 그들의 팬에게 임요환은 더욱더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10대 시절 우상이었던 임요환이 저에게 그의 경기와 그의 삶의 태도를 통해 전해준 교훈은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세 달 전에 사이판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사이판에는 타포차우라는 산이 있는데, 그 산에 올라가면 탁 트인 시야로 사이판의 전경을 볼 수 있어 타포차우산은 아주 유명한 관광명소입니다. 그런데 이 산의 정상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정상까지 일반 승용차로는 가지 못하고 SUV만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길이 험해서 운전을 조심히, 그리고 잘 해야 하는데, 제가 운전하던 당일에는 전날에 비까지 와서 진흙범벅이 된 길을 올라가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올라가면서도 내려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렇게 오르다가 바퀴가 계속 헛 돌게 되는 급경사 코스에 진입하였는데, 앞의 차가 앞으로 가질 않는 것입니다. 차에서 내려 대화를 시도했더니 한국분이셨고, 자신은 그 코스를 지나갈 자신이 없어서 아쉽지만 내려가겠다고 말하셨습니다. 그 분께서 내려가신 후에 저는 그 코스를 지나갔는데, 그 코스를 지나자마자 거짓말처럼 포장된 평지도로가 나왔고, 그 평지도로를 따라 조금만 더 가니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전 사이판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성공에 다다른 시점에서 포기를 생각하게 되나 봅니다. 

포기한 사람은 몰랐겠지만 그 사람은 이미 성공에 가까워있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혹시 지금 무엇인가를 포기하려 하고 있지는 않나요.


어때요, 오늘.

공부도 좋지만,

그래도 일요일인데,

스타크래프트 한 판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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